‘불멸의 4할 타자’ 백인천 별세…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전무후무한 0.412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4할 타율 대기록 한·일 프로야구서 23년 선수 생활…1990년 LG 초대 감독으로 통합우승 KBO, 한국 프로야구 발전 공로 기려 ‘KBO장’ 결정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로 남아 있는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백 전 감독은 이날 오전 6시41분쯤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서 뇌출혈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전날 오전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된 뒤 맥박은 회복됐지만 위중한 상태가 이어졌고, 중환자실에서 끝내 눈을 감았다. 프로야구 44년 역사에서 깨지지 않은 ‘타율 0.412’ 백인천이라는 이름을 한국 야구사에 가장 선명하게 남긴 기록은 단연 1982년 타율 0.412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백인천은 MBC 청룡에서 감독과 선수를 겸하며 타율 4할1푼2리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원년에 탄생한 이 기록은 이후 수많은 정상급 타자들이 도전했지만 아직 누구도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백인천은 현재까지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한 시즌 4할 타율을 기록한 타자로 남아 있다. 특히 감독으로 팀 전체를 지휘하면서 동시에 선수로 직접 경기에 출전해 세운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23년…한국 프로야구 이전부터 정상급 타자 백 전 감독의 야구 인생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선수로 23년간 활동하며 오랜 현역 생활을 보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경험과 기량을 쌓은 뒤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국내 무대로 돌아왔고, 이미 베테랑이었던 그가 원년 시즌에 4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의 0.412는 단순히 개인 기록 하나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 출범 첫해에 만들어진 상징적인 기록이 됐다. 선수에서 지도자로…LG 초대 감독 맡아 1990년 정상 백 전 감독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로도 한국 프로야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85년부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걸었으며, 특히 1990년 LG 트윈스 초대 감독을 맡아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LG가 MBC 청룡을 인수해 새롭게 출범한 첫해에 곧바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백인천은 선수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자신의 이름을 한국 야구사에 새겼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를 1996~1997년, 롯데 자이언츠를 2002~2003년 지휘하는 등 여러 구단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4할 타자’이자 ‘우승 감독’ 백인천의 야구 인생이 특별한 것은 선수와 감독 양쪽에서 모두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1982년에는 감독 겸 선수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0.412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8년 뒤인 1990년에는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유일한 4할 타자’와 ‘프로야구 우승 감독’이라는 두 기록이 한 사람의 야구 인생에 함께 남은 셈이다. KBO, 장례 ‘KBO장’으로 치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백 전 감독이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남긴 공적을 기려 장례를 KBO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KBO장은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큰 공적을 남긴 야구인이 별세했을 때 KBO가 주관하는 장례다. 백 전 감독은 2025년 9월 별세한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에 이어 KBO장을 치르는 두 번째 야구인이 됐다.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이후 40년 넘게 수많은 강타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아직 백인천이 1982년 작성한 ‘0.412’의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감독이면서 선수였고, 한국 프로야구 첫해 4할을 때려냈으며, 훗날 다시 감독으로 정상에 올랐던 백인천.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 야구는 한 시대를 대표했던 야구인을 떠나보내게 됐다. 그러나 ‘KBO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라는 기록과 이름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계속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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