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박정희가 옳았다!
김규나, 金葵娜, Kyuna Kim 소설가 -발랭네 가족은 매달 받는 돈 덕분에 살림에 꽤 윤기가 돌았다. 여전히 입에 풀칠하기 바쁜 튀바슈네가 끊임없이 이웃 욕을 해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샤를로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아침 멋진 마차 한 대가 두 초가집 앞에 와서 멈췄다. 금 시곗줄을 늘어뜨린 젊은 신사가 마차에서 내리더니 손을 내밀어 백발의 노부인을 부축해 내리게 했다. 노부인이 젊은 신사에게 말했다. "이 집이란다 얘야. 여기 두 번째 집." - 기 드 모파상 <시골에서> 중에서 프랑스의 메마른 시골 마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난한 두 집이 나란히 붙어살았다. 발랭네도 튀바슈네도 흙바닥을 구르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하루하루가 버거운 처지였다. 어느 날 부유한 귀족 부부가 아이가 없는 자신들을 위해 튀바슈네의 막내 샤를로를 입양하고 싶다며 거액의 양육비와 유산을 제안한다. 튀바슈 부부는 펄펄 뛰며 분노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팔 수 있느냐며, 굶어 죽어도 내 품에서 키우겠노라며 내쫓았다. 귀족 부부는 똑같은 제안을 옆집 발랭네에 건넸다. 깊은 고뇌 끝에 발랭 부부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난의 굴레를 끊고 아이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판단, 그리고 남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튀바슈네는 "우리는 자식을 팔지 않았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이웃을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며 여전히 찢어지는 가난 속에 살았다. 샤를로 역시 '팔려 가지 않았다'는 긍지로 자랐다. 그러나 20년 뒤, 황금 시곗줄을 차고 귀족의 품격을 두른 청년이 발랭네 집 앞에 마차를 멈춰 세웠을 때 모든 것은 무너져 내렸다. 평생 거친 밭을 일구며 뼈 빠지게 가난을 대물림해 온 샤를로는 부모를 향해 절규한다. 어째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느냐고, 그렇게 팔려가는 게 꼭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고 원망하며 집을 뛰쳐나간다. 모파상은 도덕주의의 껍데기를 잔인할 만큼 차갑게 벗겨낸다. 튀바슈네의 선택은 고결한 인륜처럼 보였다. 샤를로의 분노가 괘씸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허한 명분과 도덕적 결백증에 갇힌 대가는 가혹한 빈곤의 영속화였을 뿐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비난을 감수하고 깊은 고뇌 끝에 한 발을 내디뎠던 발랭네는 가족을 살려냈고 아이에게 풍요의 미래를 열어주었다. 이 단편소설은 반세기 전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분기점을 떠올리게 한다.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세계 최빈국의 멍에를 멘 채 굶주리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정부, 그리고 가난과 절망의 늪에서 국가를 건져 올리기 위해 그는 분연히 일어섰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했다. 지하 수천 미터 독일의 막장으로 아들 같은 청년들을 보내고, 시신을 닦는 병원의 간호사로 딸과 같은 젊은이들을 떠나보냈다. 빗발치는 포화 속 베트남의 정글로 국군도 파병했다. 그들이 흘린 땀과 피는 조국 근대화의 종잣돈이 되었다. 굴욕적이라는 야당의 극렬한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대일 청구권 자금을 끌어와 고속도로를 뚫고 포항제철의 용광로를 피워 올리며 중화학공업의 기적을 일궈냈다. 반면 북한의 김일성 집단은 '자주’와 ‘자력갱생’이라는 이념적 깃발을 치켜들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쳤다. 당시 남한의 야권 지도자들, 김영삼과 김대중도 북한과 한 목소리로 '민족'을 외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한일협정에 분노했다. 농업 중심, 내수 산업 위주의 소박한 경제를 주장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을 국민을 파멸로 모는 폭거라며 사사건건 반대했다. 해방 직후 일제가 남긴 산업 인프라 덕에 북한이 남한보다 부유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0년, 20년, 30년, 세월이 흘렀다. 공산주의 이념을 앞세운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 체제 아래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굶주림과 잔혹한 인권 탄압이 지배하는 지옥으로 전락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과 헌신 덕에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런데도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서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은 여전히 낡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박정희가 민족을 팔아먹었다고, 국민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다고, 피 묻은 독재자라며 악을 쓰고 폄훼한다. 피땀 흘려 산업화를 이루어낸 토대 위에서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풍요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정작 그 번영의 기초를 놓은 지도자를 향해 침을 뱉는 기괴한 위선이다. '국민을 팔아 잘 먹고 잘살았다'는 식의 악의적인 선동으로 지난 역사를 매도하는 것은, 자식을 팔지 않았다는 얄팍한 자존심 하나로 자식의 기회를 날려버린 튀바슈 부부의 우매함과 정확히 일치한다. 진흙탕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서독으로 향했던 광부와 간호사들, 베트남 전선에서 청춘을 바친 참전 용사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고생이 있었기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가족이 일어섰고, 자신도 삶의 주역으로 당당히 살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세운 주역이라는 긍지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저들의 비열한 역사 왜곡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내마저 죽이는 비정한 독재자'라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화의 거짓을 통해 국민들은 역사의 실체를 직시했고, 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에 압도적 1위로 박정희 대통령이 우뚝 섰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공허한 명분에 취해 국민을 굶주림의 생지옥에 가두어둔 김일성의 길과, 온갖 비난과 모욕을 홀로 짊어지며 국가의 번영과 자손들의 풍요로운 내일을 개척한 박정희의 길, 그리고 민족적 순결을 부르짖으며 빈곤을 대물림하는 공산주의의 위선과, 비장한 승부수로 미래를 열어젖힌 자유 대한민국의 용기 중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역사는 이미 명백한 해답을 내놓았다. 풍요와 자유의 열매를 누리고 있는 오늘날, 그 고독했던 결단의 진정한 가치는 더욱 또렷해진다. 박정희, 그가 옳았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유 대한민국이여!

차액은 비자금으로 슈킹이라도 하나?
개재명 여의도 개사육장 똥개들 도독질에 사기꾼 전문 학교가 여의도 개사육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