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지성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집니다”
대한민국은 중국·북한 공산당에 매몰되어있다. 선거로부터 그 경향이 명료해졌다. 2026년 6·3일 지방선거로 확실히 그 경향이 노출되었다. 그 증거를 찾는 일이 관건이다. 하느님의 역사는 항상 진실의 증거를 남긴다. 완벽한 범죄행위는 없는 것이다. 부정의 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그걸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고, 그걸 정책적으로 다시 수정하려는 의지와 그 주체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지성인까지 외면하면서 그 질곡은 점점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부정선거의 역사는 2002년 12월 19일 대선으로 시작되었다. 조해주 당시 선거과장은 2002년 12월 19일 KBS 대선 개표방송에서 전자개표기를 언급했다. 그는 다시 문재인 재임 당시 인 2019년 1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을 임명했다. 문재인은 자타가 인정하는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었다. 그 문화는 계속된다. 아니, ‘화기(火氣)’로 증폭이 되고 있다. 트루스데일리 윤정화 편집위원(2025.12.24.), 〈[사법적 책임의 역사적 규명] 전자개표기 부패의 구조, 해킹, 그리고 법의 침묵 결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전자개표기는 기술 혁신의 결과가 아니라 부패의 산물이었으며, 2003년 대법원의 2003수26 판결은 진실을 외면한 역사적 오점으로 남았다. 이후 밝혀진 북한 해커 조직 ‘김수키(Kimsuky)’의 침투 정황과 한겨레 서버 해킹 사건은 부정선거 의혹이 단순한 정치 논란이 아니라 보안 부실의 구조적 결과임을 시사한다. 이 글은 사법부가 외면한 기술적 진실에 대한 역사적 규명을 촉구한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그러나 그 심장이 처음부터 오염된 피로 뛰기 시작했다면, 그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부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002년 대선, 2003년 대법원 판결, 그리고 2010년대 이후의 해킹 정황은 모두 하나의 축으로 이어진다. 그 축의 이름은 바로 ‘법의 침묵’ 그리고 ‘사법적 방조’다. 남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를 선택했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만약 이 자유의 땅에서, 부정선거라는 시스템 조작을 통해 국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권이 탈취된다면, 그 순간 이 나라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라 할 수 없다.” 조선일보 방극렬·윤성은·강혜진 기자(2026.06.04.), 〈잠실선 대기표 받으러 500명 줄 서…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 많다"〉,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가 진행된 3일, 투표 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된 전국 투표소 10여 곳에선 혼란이 이어졌다. 투표를 하기 위해 한 시간 넘게 대기한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 마감 시간을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로 연장했다...국민의힘에 따르면, 투표 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된 투표소는 17곳이다. 서울 송파구 투표소 8곳(가락2동 3·7투표소, 문정1동 4투표소, 문정2동 2투표소, 잠실2동 6투표소, 잠실4동 5투표소, 잠실7동 2투표소, 위례동 5투표소), 강남구 2곳(청담동 4투표소, 개포2동 2투표소), 서초구 2곳(잠원동 7투표소, 반포4동 3투표소), 광진구 1곳(구의3동 6투표소), 동작구 1곳(노량진1동 7투표소), 인천 2곳(송도5동 1투표소, 동춘1동 6투표소), 경기 화성 1곳(동탄4동 5투표소) 등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상능 선거1국장은 “(이번과) 유사한 사례가 과거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만 투표 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총 유권자가 100명이라면 투표 용지를 50장만 인쇄해 놨었다는 얘기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투표 용지가 남아도 갈등의 빌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선관위가 용지 수를 보수적으로 집계한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2동 6투표소(잠일초교)는 본지 기자가 투표 마감을 7분 남겨둔 오후 5시 53분쯤 찾았을 때 유권자 150여 명이 투표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 투표 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투표소는 오후 4시 30분부터 투표가 중단됐고, 선관위 사무원들은 유권자들에게 대기표를 나눠줬다. 투표소를 찾은 잠실2동 선관위원장은 “중앙선관위에서 투표 용지 50장을 받아 우선 50명부터 투표를 진행하고, 나머지 인원은 대기 후 순차적으로 투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유권자들은 “이미 기다리다 돌아간 사람도 많은데 50명을 무슨 기준으로 정하느냐” “먼저 온 사람 순서를 어떻게 확인하느냐”며 반발했다. 같은 학교 다른 투표소인 잠실2동 5투표소도 투표가 중단됐는데, 이 투표소는 국민의힘이 발표한 투표 중단 투표소 17곳에 포함되지 않은 곳이다.” 중앙일보 사설(06.04), 〈용지 부족으로 투표 차질…민주주의 꽃을 부러뜨린 선관위〉, 어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있어서는 안 될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문명국에서 일어난 현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라의 국격이 말이 아니다. “서울 송파·강남·광진구와 인천시 연수구 등 수도권 일대 10여 곳의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중단됐다.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소에 도착했는데도 투표하지 못하고 줄을 선 유권자들은 투표가 언제 재개될지 모른 채 기다려야 했다. 선관위 측은 추가 용지가 도착할 때까지 대기표를 배포한 뒤 마감 시간이 넘어도 투표가 가능하다고 안내하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1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는 유권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투표에 차질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투표장을 찾지 않은 유권자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명백한 참정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투표 제도의 근본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어서 참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빚어진 것은 선관위가 투표용지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에 따르면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만 투표 용지를 준비했다고 한다. 선관위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용지가 부족했다는 주장이지만,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다. 투표 현장에선 구청 직원이 오후 1시부터 용지 부족을 우려해 추가 용지를 요청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주권자의 소중한 한 표 행사를 보장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기본적인 투표 용지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데다 문제 발생 후 대응에서까지 치명적인 구멍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이상로의 카메라 출동(06.03), 〈"출구조사 결과가 확정된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선거가 아니다 "(6.3지방선거 특별방송 제 2부)〉, 이상로 기자는 벽돌 투표지로 CIA, 모사드에 계속 고발해왔다. 특별방송 9회까지 한 이상로의 카메라 출동은〈이재명은 즉각 물러나라 (아침뉴스브리핑 2026.06.04.)〉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내용은 ‘기표하지 않은 투표지’, 무수히 많은 ‘벽돌 투표지’, ‘투표지 밑에 붙어 있는 점선 부분을 투표관리관이 찢어야 하지만, 개표 검사원이 찢는 것이 허다하다.’라는 사실을 밝혔다. 대한민국 적화공작이 투표에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트루스데일리 조정진 대표기자(06\5.23), 〈[단독] 광화문에 ‘조선대사관’ 이어 김정은 사진… 파주엔 김일성·김정일 동상〉,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과 함께 김정은 사진까지 나란히 배치된 해당 전시는 시민에게 강한 위화감을 안기고 있다. 트루스데일리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과 함께 김정은 사진까지 나란히 배치된 해당 전시는 시민에게 강한 위화감을 안기고 있다. 트루스데일리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상징 공간인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최근 잇따라 벌어진 일들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북한 관련 상징물과 전시들이 이제는 공공장소와 도심 한복판에서 거리낌 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는 ‘한반도 평화 4개국 정상회의’를 명분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이 대형 전시물 형태로 설치돼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과 함께 김정은 사진까지 나란히 배치된 해당 전시는 시민에게 강한 위화감을 안기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사진 한 장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실질적 적대 세력이다. 한마디로 주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수도 중심부, 그것도 대한민국 역사와 한미동맹의 상징적 공간에서 북한 독재자의 얼굴이 아무렇지 않게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의 안보 감수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자신이 ‘투표용지 노출 논란!’에 휩싸였다. 트루스데일리 정재호 민족중흥회 회장(05.31), 〈대통령의 화기(火氣)가 몰고 온 '탱크데이' 자충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혁명 문화가 계속되고 있다. “6.3 선거 판세를 홀랑 집어삼킬 양으로 설치던 권력의 돌개바람이 한풀 꺾이자 숨죽었던 스타벅스 마케팅이 가까스로 한숨을 몰아쉬는 모양새다. ‘5·18과 탱크데이’를 한 묶음으로 다룬 광고 탓에 5·18능멸협의로 구석으로 내몰려 폭삭 주저앉았던 스타벅스의 위기 탈출은 진실 복원과 맥락을 같이한 유의미한 결과다. 5·18 날짜에 함축된 역사의 편린, 그 뜻을 온전히 살피지 못한 기업체 실무진의 비좁은 소갈머리가 빚은 부주의 소산은 심각했다. 자체 조사 결과 의도적인 실책 흔적은 전무한 것으로 발표됐다. 미주알고주알 자질구레한 일쯤은 잘도 챙기는 이재명 대통령 특유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이 아슬아슬 자충수 선상을 걷는 긴장감을 풍겼다.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인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 SNS에 올린 대통령의 화기(火氣) 넘치는 글이다.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가보훈부, 국방부, 법무부까지 앞 다투어 ‘분노의 깃발’을 치켜세웠다. 좌파성향 시민사회단체와 개딸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불매운동이 요란했다. 스타벅스의 커피 잔이 산산조각 부서져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언필칭 세계경제 10위권 국가가 ‘문명속의 야만’의 알몸을 드러내는 꼴이다. 오가는 시선은 영 곱지 않았다. 정부 각료들이 시장의 자유로운 유통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 세계인의 시각에 어떻게 비쳐질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상황이 점점 험악해진다. 중국·북한 공산당은 선전·선동 수법이 대단하다. 트루스데일리 하봉규 헤리티지코리아 대표·부경대 명예교수(06.03), 〈[명사탐방]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 "지성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집니다"〉, “국제정치학자이자 한림대학교 총장을 지낸 이상우 박사는 "요즘 가장 걱정되는 것은 무용지식(Obsoledge)"이라며 "지성이 결여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제공 벽면 가득 꽂힌 책들과 정갈하게 정리된 자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필자를 맞이한 이는 국제정치학자이자 한림대학교 총장을 지낸 이상우(88) 박사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흘러갔다. 필자에게 이 전 총장은 단순한 인터뷰 대상이 아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시절 학문의 길을 가르쳐준 은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국제정치학자로 변신한 그는 공군사관학교 교수, 국제정치학자, 정책 자문가를 거쳐 이명박정부 시절 국방개혁을 총괄했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세대는 대한민국이 가장 가난했던 시절과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했던 시절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한강의 기적'을 일군 세대로 향했다. 그는 특히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로 순국한 고 김재익 경제수석 이야기를 꺼냈다. "김재익 수석은 오랜 친구였습니다." 이 전 총장은 미국 유학 시절의 추억을 조용히 회상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수학하던 김 수석이 하와이에 머물며 함께 미래의 대한민국을 논하던 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1980년대 경제발전의 의미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어려운 전환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출 중심 정책과 경제 안정화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장 모델이 됐습니다." 이 전 총장은 일제강점기 말 경북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북에서 성장했고,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인민군 점령을 직접 경험했다. 잠시 말을 멈추던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일제시대보다도 인민군 치하가 더 무서웠습니다." 어린 시절 목격한 인민재판과 강제 동원, 그리고 공포 분위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는 잃어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압니다." 그 한마디에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체험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는 더욱 단호해졌다. 공군사관학교 교수로 수많은 장교를 가르쳤던 그는 최근 한국 사회의 지적 토대가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요즘 가장 걱정되는 것은 무용지식(Obsoledge)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사용한 개념을 인용한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낡은 지식과 피상적 정보만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현상을 한국 교육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독서 부족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결국 지성이 결여된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자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언어와 사고의 깊이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19세에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던 이상우 전 총장은 이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과 저술을 남겼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보다 그가 더 강조하는 것은 책임이었다. "엘리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강조하는 그는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문화"라고 강조하다. 연합뉴스” 19세에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던 이상우 전 총장은 이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과 저술을 남겼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보다 그가 더 강조하는 것은 책임이었다. "엘리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강조하는 그는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문화"라고 강조하다. 연합뉴스 19세에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던 수재였던 그는 이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과 저술을 남겼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보다 그가 더 강조하는 것은 책임이었다. "엘리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그는 영국 이튼스쿨과 미국 명문대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졸업생들을 기리는 전통을 예로 들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문화입니다."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의 수많은 희생 사례를 언급하며 그는 진정한 문명은 약자를 위한 희생과 책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국제정치학자로서의 시각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국제정치학 고전 ‘국제정치론(Politics Among Nations)’를 언급하며 법치주의의 본질을 설명했다. "도덕과 관습, 그리고 법은 모두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법치주의는 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도덕과 관습이 먼저 서고 그 위에 법이 서야 합니다." 최근 사회 갈등과 정치권의 입법 논란에 대해서도 이러한 관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이 정도까지 중국·북한 공산당 문화가 엄습한 것은 지성의 문제,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이 궁금하다. 1920년 강점기 당시도 지성은 침묵하면서, 인민의 고통은 더욱 혹독했다. 방금 태어난 신생 언론은 ‘조선부노(朝鮮父老)’를 질타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신생 신문에게 그 화살을 돌렸다. 부정선거 및 공산화 상황에서 언론과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당시 언론은 인생의 존재가 생이요, 생활의 형식이 의식주이며, 의식주의 기초가 재물이요, 재물의 원천은 경제로 본 것이다. 「조선일보」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직물을 장려하며, 토산품을 개발하며, 무역을 강화시키기 위해 실업계의 실지(實地)를 가지도록 권장했다.(「조선일보」, 1920. 03. 07.) 또한 「동아일보」는 경제가 인생 생활의 원근이요 도덕(「동아일보」, 1920. 07. 13.)이라고 규정했다. 즉 경제가 발달한 사회에서만 생활의 안정이 있으며, 생활의 행복이 있으며, 도덕과 예절이 바로 설 수 있다라고 이 신문은 규정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문화 국가 건설의 핵심 사상을 국민 교육의 진작에 두고 각 인민의 사회적 각성과 생활 의식 개혁을 추구했다.(「동아일보」, 1922. 10. 04.) 젊은 편집자들은 1920년 5월 4일부터 9일까지 사설 〈조선부노(朝鮮父老)에게 고(告)함〉에서 전통적 사고를 부정하고 현대의 신사고를 소개했다. 현대 문화는 생활 의식을 띠지 아니한 것이 없으며, ‘민족적 감정’도 생활 의식을 토대로 하는 신문화의 변용으로만 가능하다는 전제이다. 신생신문은 과거 생활상의 인습 제도를 타파하는 한편, 개인 차원에서 자연계를 개척하고, 노동력을 가하여 현대 생활에 적응할 만한 가치 있는 생활을 영위하며, 민족적 차원에서 민족적 감정을 생활 의식과 연결하여 인민이 생활에 충실을 기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