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좌파 성향 연예인들의 선택적 분노 / 싸이킹 프라임
분노는 정의를 향할 때 힘을 가진다. 그러나 분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국민들이 일부 좌파 성향 연예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가장 큰 실망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일부 연예인들은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세월호 참사, 환경 문제, 노동 문제, 여성 인권 문제, 사회적 약자 보호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사회 참여를 강조했다. 그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명인이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문제는 기준의 일관성이다. 어떤 사건에는 분노하고 어떤 사건에는 침묵한다면 국민들은 그 분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지지하는 좌파 정치세력에 불리한 사건에는 침묵하면서 반대 진영에 불리한 사건에는 누구보다 앞장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사회정의가 아니라 정치활동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6.3 지방선거 이전 기간에 불거졌던 이른바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이다. 당시 일부 연예인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SNS를 통해 의견을 밝히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매우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선거 이후 제기된 각종 선거관리 논란과 관리 부실 문제에 이은 명백한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다. 선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린다면 그 어떤 사회 문제보다도 중대한 사안일 수 있다. 특히 선거관리 부실과 명백한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되었고,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각종 사회·정치 이슈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일부 좌파 연예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힐 의무는 없다. 연예인도 시민이며 침묵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관성이다. 왜 어떤 문제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다른 문제에는 침묵하는가. 왜 어떤 의혹에는 즉각 반응하면서 다른 의혹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가. 국민들이 비판하는 것은 특정 정치 성향 자체가 아니다. 한쪽에만 적용되는 기준이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문제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목소리는 설득력을 갖는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좌파 연예인도 아니고 우파 연예인도 아니다.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공인이다. 내 편일 때는 침묵하고 상대편일 때만 분노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진영논리일 뿐이다. 선택적 분노는 결국 스스로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분노는 선택적으로 사용될 때 힘을 잃는다. 그리고 국민은 생각보다 훨씬 예리하게 그 차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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