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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커뮤니티,진화하는 세상' 싸이킹

관리자
관리자•2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민생과 법치는 어디 두고, 왜 지금 개헌인가

이재명이 대통령 4년 중임·연임제와 권력구조 개편, 그리고 5·18 헌법 전문 수록을 골자로 하는 개헌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개헌 논의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현행 5년 단임제의 한계를 점검하고, 대통령과 국회 간의 권한 배분을 재조정하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논의해 볼 수 있는 주제다. 그러나 국민이 정작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왜 하필 지금인가?" ​현재 국민의 삶은 부동산 불안, 청년 일자리 난, 고물가와 주거비 부담으로 신음하고 있다. 민생경제의 경고등은 이미 켜졌다. 여기에 이재명 본인과 관련된 형사재판 재개 논란 등 사법 리스크와 부정선거로 인한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국정의 우선순위가 민생과 법치에 있어야 할 시점에, 정권이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의제를 던진다면 국민은 당연히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헌법은 정권의 위기를 가리는 방패가 아니며, 국정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도 아니다. 이번 개헌 논의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본다. ​1. 현직 대통령 불적용 선언부터 명확히 하라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연임제는 엄연히 다른 제도다. 제도의 형태를 떠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개정안이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는가" 이다. ​헌법 개정 논의에서 임기 연장이나 재출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겨진다면, 개헌 논의 전체가 정권의 이해관계에 이용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재명이는 개헌을 추진하기 전에 "이번 개헌으로 신설되는 임기 규정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고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 이것이 개헌 논의의 진정성을 입증할 첫 번째 요건이다. ​2. 사법적 리스크부터 정리하는 것이 법치의 순서다 ​대통령 취임 이후 중단된 형사재판을 둘러싸고 법률적·헌법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법적 논쟁과 법치주의 회복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국가 권력구조부터 바꾸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정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원칙을 국민에게 먼저 보여주는 것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 ​3. 5·18 헌법 전문 수록이 전제가 아닌,유공자 제도의 투명성부터 확보하라 ​5·18 은 현재 역사적 실체적 진실 논란이 계속되고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한민국 최고 규범인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차원의 문제다. 헌법에 수록될 만큼 떳떳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국민적 합의와 제도적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제기하는 5·18 유공자 선정 과정 및 예우에 대한 의문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국가 행정과 세금 집행에 대한 정상적인 검증 요구다. ​어떤 기준과 절차로 유공자가 선정되었는지 ​보상과 예우의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검증 시스템은 공정하게 작동하는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별 신상 공개에 한계가 있다면, 정부는 법적 근거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익명화된 공적 심사 자료나 검증 절차를 국민 앞에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제도가 공정하다면 투명한 공개야말로 진짜 유공자들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검증 요구를 성역화로 막을 것이 아니라, 투명한 공개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먼저 도출하는 것이 순서다. ​4. 성격이 다른 쟁점들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지 마라 ​권력구조 개편(중임제), 정부형태 변경(분권형 개헌), 헌법 전문 수록(5·18)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의제들이다. 이를 하나의 개헌안으로 묶어 찬반을 강요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다. ​4년 중임제에는 찬성하지만 5·18 전문 수록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정치권의 편리함에 따라 쟁점들을 거래하듯 패키지로 묶을 것이 아니라, 각 쟁점별로 국민의 의사를 개별적으로 물어야 한다. ​결론: 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 임기제도, 권력구조, 헌법 전문 수록 모두 토론할 수 있는 주제다. 그러나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민생 안정과 법치주의 회복이다. ​국민의 삶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권의 정치적 사정을 위해 헌법을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헌법을 고치기 전에 국정부터 바로잡고,이재영 본인의 사법 문제, 5·18을 헌법전문 수록 운운하기전에 관련 제도의 투명성부터 국민 앞에 증명하라. 순서가 뒤바뀐 개헌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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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3일 전

'경축' 8.15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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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바짝_혜사랑
정신바짝_혜사랑•3일 전

대한민국 건국 78주년

대한민국 건국 78주년입니다. 선진한국 선교한국 통일한국 이루라고 기적의 연속으로 세워진 나라. 그 기적과 이사들을 감사하지않고. 맡기신 사명감당하지않고 땅에 묻었던 달란트들이 도로 빼앗기고 있는 상황들을... 애통하며 회개합니다. 오늘 다시한번 회개하고 감사하며 나라위해 기도하는 하루 되세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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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바짝_혜사랑
정신바짝_혜사랑•3일 전

8.15 광복절에도 재선거를 외친다 / 올공 - https://youtube.com/shorts/ZqJXAQqt3lk?si=xWktMK4yCbOced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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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4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거꾸로 된 태극기, 단순 실수인가 국가체제전복의 신호인가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독립,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최고의 국가상징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과 공공기관을 둘러싸고 ‘거꾸로 된 태극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실수라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지는 유력 정치인부터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공적 영역 전반에서 유사한 장면이 거듭 노출된다면 국민은 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무관심에 의한 해프닝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체제 전복을 꿈꾸는 세력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암호화된 상징 신호인가. ​ ​과거 이재명이가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 출마 기자회견 당시 착용했던 태극기 배지가 뒤집혔던 사건은, 지적 직후 본인이 배지가 돌아간 점을 인지하고 현장에서 고쳐 달며 단순 해프닝처럼 일단락된 적이 있었다. ​또한 최근 발생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가 인천시장으로 있는 인천시의 광복절 기념 현수막 속 태극기 역배치 논란이 있었다. 시 측은 '독립운동가가 태극기를 머리 위로 들고 있는 모습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구도'라고 해명했으나, 광복절이라는 국가적 성일(聖日)에 공공기관이 제작·검수한 공식 홍보물에서 국민들에게 '뒤집힌 태극기'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이 사전에 걸러지지 않고 내걸렸다는 점은 훨씬 중대하고 심각한 공적 관리 부실이자 정서적 위협이다. ​북한 난수방송의 체제전복 신호와 의도적 노출의 실체 ​개인의 해프닝과 공공기관의 안일한 검수를 넘어, 이 논란이 안보적 위협으로 확장되는 본질적인 실체는 따로 있다. ‘거꾸로 된 태극기’가 실제 북한의 대남 공작 및 난수방송에서 체제전복 지령을 위해 사용된 실제 상징 이미지라는 점이다. ​북한이 송출한 공작 자료 화면 속에는 한반도 지도, 특정 지역 및 기업 로고와 함께 태극 문양이 뒤바뀐 거꾸로 된 태극기가 명확히 등장한다. 이는 거꾸로 된 태극기가 북한과 반대한민국 세력 사이에서 특정한 지령 전달 및 주사파·체제전복 조직 간의 식별 신호(Signal)로 활용되어 왔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다. ​결국 개인의 단순 실수로 치부되었던 배지 해프닝부터 공공기관의 무감각한 현수막 게시까지, 반대한민국 세력과 좌파 정권 주변에서 거꾸로 된 태극기 상징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북한의 대남 체제전복 신호와 궤를 같이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려는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태로 동일시하여 바라보아야 한다. ​8.15 광복절, 자유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일어서라! ​국가체제는 총과 탱크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국가의 정통성을 조용히 조롱하고, 국기를 뒤집어 국민의 정체성과 애국심을 약화시키는 정신적 공작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북한 난수방송의 체제전복 신호와 공적 영역에서 반복되는 태극기 거꾸로 달기 행태는 대한민국 안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명백한 경고음이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의 행위를 '실수'나 '시각적 구도'라는 기만적 변명 뒤에 숨겨두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시간이 없다. ​다가오는 8.15 광복절을 기점으로, 자유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모든 국민들이 단합하여 들고 일어나야 한다. 거꾸로 뒤집힌 태극기를 바로잡고, 국가 정통성을 흔드는 반대한민국 세력과 북한의 체제전복 공작에 맞서 결연히 싸워야 할 때다. ​태극기는 자유대한민국의 자존심이자 국민의 얼굴이다. 8월 15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의 분노와 결기가 올바른 태극기의 물결로 거리를 물들일 때, 비로소 이 땅의 체제전복 음모를 뿌리 뽑고 자유대한민국을 완벽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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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5일 전

호적제(본적제),연좌제,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 부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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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5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반대한민국 세력확장에 장애물이었던 호주제(본적제)·연좌제·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 호주제(본적제)·연좌제·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 부활로부터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개혁’과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제도를 폐지하고 바꾸어 왔다. 분명 시대 변화에 따라 폐지해야 했던 제도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그 기능과 의미까지 낡은 것으로 취급하고 없애버린 사례는 없었는지 이제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폐지가 곧 진보였는가. 없애고 나니 대한민국은 더 건강한 공동체가 되었는가. 나는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해 과거에 폐지되거나 변경된 제도들을 성역 없이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상징적인 것이 호주제와 본적제, 연좌제, 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다. 물론 이 제도들을 과거의 구시대적 모습 그대로 복원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연좌제의 ‘부활’은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과거식 혈통 연좌제를 되살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가족·측근·권력 주변에서 실제로 불법행위에 가담하거나 이익을 공유한 사람의 책임을 끝까지 추적하는 현대적 개인책임 원칙을 강화하자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과거로의 퇴행’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과거 제도의 폐단과 위헌적 요소는 철저하게 제거하되, 그 제도가 담고 있었던 가족의 뿌리, 책임의식, 지역 정체성, 공동체의 연결성을 현대 행정체계에 맞게 다시 설계하자는 것이다. 1. 호주제와 함께 사라진 것은 단순한 ‘호주’만이 아니었다 호주제는 과거 남성 중심의 호주를 기준으로 가족을 편성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폐지되어 개인별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호주제를 없애면서 우리는 가족 내부의 불평등만 없앤 것인가. 아니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중심과 세대의 연결성까지 지나치게 약화시킨 것은 아닌가. 현행 가족관계등록부가 개인 중심의 행정 편의를 제공한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각각의 기록만으로는 한 가족이 세대를 이어 형성되는 공동체라는 점과 구성원 상호 간의 책임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호주제를 논의한다면 과거처럼 남성이 자동으로 호주가 되는 부계 중심 제도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남성과 여성에게 완전하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가족이 자율적인 합의에 따라 대표자를 정하거나 세대 간 가족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기록하는 현대적 가족책임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핵심은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제’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은 외면하는 파편화된 개인사회를 넘어,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가족 공동체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2. 본적제, 차별의 도구가 아닌 ‘역사와 뿌리의 기록’으로 호주제와 함께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본적제다. 과거 본적제에는 행정상의 불편과 신분 차별, 출신지역에 따른 불이익이라는 명확한 문제점이 존재했다. 출신지역을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취업·혼인·교육·승진 등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차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뿌리와 가족의 역사적 연고지까지 국가 기록에서 완전히 지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본관과 고향, 선대의 출신지역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를 기억해왔다. 현대적인 본적제는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장치가 아니라 가족의 역사와 지역적 뿌리를 기록하는 제도로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출생지는 출생지대로 기록한다. 현재 주소는 행정상 주소로 관리한다. 그리고 본적은 개인 또는 가족의 역사적 연고지를 나타내는 별도의 기록으로 관리하면 된다. 동시에 본적 정보를 취업·교육·승진 등 개인의 사회적 평가자료로 요구하거나 악용하는 행위는 법률로 엄격하게 제한하면 된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본적 변경이나 표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적은 차별의 도구가 아니라 ‘뿌리의 기록’이 될 수 있다. 출신지역이 있다는 것이 왜 시대착오인가 세계 어느 나라든 사람에게는 출생지와 고향이 있다. 지역에는 역사와 문화가 있고 가족에게는 뿌리가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출신지역을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것 자체를 마치 후진적인 일처럼 보는 시각도 생겼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출신지역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출신지역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문제다. 둘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경상도 출신이면 경상도의 뿌리를 가지고, 전라도 출신이면 전라도의 뿌리를 가지고, 충청도·강원도·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을 숨길 이유는 없다.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지역 자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달라도 서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본적제 재도입의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본적은 기록하되 차별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라. 3. 지역표시를 없앤다고 지역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자동차 번호판에는 서울·부산·경기 등 차량 등록지역이 표시됐다. 이후 이사에 따른 번호판 교체의 불편과 전국 단위 자동차등록체계의 필요성 등에 따라 지역표시가 없는 번호체계로 전환됐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정전산망이 발달했다. 현대적인 전산체계에서는 주소 이전과 번호판의 지역표시를 반드시 연결하지 않고도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차량의 최초 등록지역을 표시할 수도 있고, 소유자가 희망할 경우 현재 등록지역을 표시하도록 선택권을 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지역표시 자체 때문에 행정상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현대화하면 되는 것이다. 특정 지역 번호판 때문에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본질을 잘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지역 정체성 자체가 아니다. 지역차별 문화가 문제다. 지역 이름을 번호판에서 지운다고 지역갈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이라는 이름을 지운다고 서울이 없어지지 않는다. 전남이나 경북이라는 이름을 숨긴다고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각 지역이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하나의 국가공동체 안에서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국가통합이다. 현대적인 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는 획일화된 행정체계 속에서도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4. 연좌제의 혈통 처벌은 금지하되 ‘현재의 행동’에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연좌제 문제는 다른 제도보다 훨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부모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자녀가 처벌받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의 행동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사회생활과 공직 진출이 자동으로 제한되는 방식은 자유민주주의의 개인책임 원칙과 맞지 않는다. 과거식 혈통 연좌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연좌제가 폐지됐다는 사실이 역사적 사실을 지우거나 현재 진행 중인 실제 안보위험과 범죄행위를 외면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친일과 반대한민국 행위의 역사는 지워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행위가 확인됐다면 그 사실은 그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후손에게 조상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의 친일·반민족 행위를 적극적으로 미화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면 그러한 주장 역시 역사적 자료와 사실에 의해 검증되고 비판받을 수 있다. 죄는 상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태도는 본인의 선택이다. 친일행위자의 후손이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조상을 이유로 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역사적 친일행위를 영웅시하거나 왜곡한다면 그것은 후손이라는 혈통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역사관과 표현에 대해 평가받는 것이다. 친공산주의자의 후손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의 행동을 봐야 한다 공산주의 활동이나 북한 정권에 협력한 사람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 임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의 혈통 연좌제를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대쪽 극단으로 가서도 안 된다. 국가 핵심기관에 들어가려는 사람의 현재 행동과 실제 안보위험을 전혀 검증하지 말자는 의미도 아니다. 특히 군·정보·방첩 등 국가기밀과 국민의 생명, 국가안보를 직접 다루는 직위라면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보안 적합성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 기준은 조상이 누구인가가 아니다. 본인이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하는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는가. 적대세력과 실제로 연계된 사실이 있는가. 국가기밀을 유출하거나 적대세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공적 권한을 악용한 전력이 있는가. 반헌법적 폭력활동이나 국가안보를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에 가담했는가. 이와 같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행동과 보안위험을 검증해야 한다. ‘사상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머릿속 생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가기밀을 맡길 사람의 실제 행동과 적대세력과의 연계 위험까지 외면해서도 안 된다. 혈통은 보지 말고 행동을 보라. 가문을 보지 말고 실제 위험을 검증하라. 이것이 자유대한민국의 원칙이어야 한다. 5. 권력형 범죄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 연좌제와 반드시 구분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권력형 범죄다. 공직자가 자신의 가족 명의로 재산을 숨겼다면 당연히 추적해야 한다. 공직자의 가족이 그 사람의 권력을 이용해 이권에 개입했다면 조사해야 한다. 친인척이나 측근이 차명계좌, 재산은닉, 특혜사업 등에 직접 관여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은 연좌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직접 불법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해서도 안 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서도 안 된다. 누구의 아들인가. 누구의 배우자인가. 누구의 형제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이 강화해야 할 것은 혈통 연좌제가 아니라 공범과 이익 공유자의 행위를 끝까지 추적하는 강력한 개인책임제다. 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지우려고 했는가 호주제와 본적제, 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뿌리. 고향이라는 뿌리. 지역이라는 뿌리. 역사라는 뿌리. 이런 것을 모두 없애면 사람은 더 자유로워지는가. 아니면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만 남게 되는가. 나는 자유대한민국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는 뿌리가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면서 다른 지역을 존중할 수 있다. 자신의 지역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더 큰 공동체를 사랑할 수 있다. 가족과 지역과 국가의 정체성은 서로 충돌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정상화는 ‘뿌리와 책임의 복원’이다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은 과거의 고리타분한 법률이나 가부장적인 제도가 아니다. 그 제도들이 담고 있던 본질적인 가치다. 가족의 역사와 책임. 자신의 뿌리에 대한 기억.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직함.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그리고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방향의 재설계를 제안한다. 호주제 → 남녀평등과 자율성을 전제로 한 ‘현대적 가족책임제’. 본적제 →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가족의 연고와 역사를 기록하는 ‘가족 역사 기록제’. 연좌제 → 혈통 처벌을 금지하되 실제 불법행위와 반헌법적 행동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강력한 개인책임제’. 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 → 디지털 행정을 기반으로 이동의 불편 없이 지역 정체성을 표현하는 ‘자율적 지역표시제’. 이렇게 바꾸자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이 주장을 두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그대로 복사하자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버리고 필요한 가치는 되살리자는 것이다. 과거 호주제의 남성 중심적 요소는 버리자. 본적을 이용한 출신지역 차별은 막자. 조상의 행동 때문에 후손을 처벌하는 혈통 연좌제는 금지하자. 그러나 친일과 반대한민국 행위의 역사적 사실은 숨기지 말자. 현재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국가안보를 실제로 침해하는 행동에는 누구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동차 번호판의 지역표시 때문에 발생했던 행정상 불편은 현대적인 디지털 행정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남는 장점은 되살리자. 이것이 진짜 개혁이다. 무조건 없애는 것이 개혁이 아니다. 과거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시대에 맞게 더 나은 제도로 만드는 것이 개혁이다.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해 이제 이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호주제는 남녀평등과 가족의 자율성을 전제로 현대적 가족책임제로 재검토하자. 본적제는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가족의 역사와 뿌리를 기록하는 제도로 재도입을 검토하자. 연좌제는 혈통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실제 범죄와 국가안보를 침해하는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묻는 개인책임 원칙으로 재정립하자. 친일과 친공의 역사적 사실은 숨기지 말고 기록하되, 후손은 조상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 평가하자. 군·정보·방첩 등 국가 핵심 안보직위는 출신성분이 아니라 헌법 준수 의무, 보안 적합성, 적대세력과의 실제 연계 여부와 구체적인 행동을 기준으로 철저하게 검증하자. 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는 이동의 불편 없이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현대적 방식으로 재도입을 검토하자. 대한민국 정상화는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버렸는지를 다시 살펴보는 데서 시작된다. 가족의 뿌리를 되찾고, 지역의 정체성을 되찾고, 역사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행위에 대한 책임을 되찾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되찾아야 한다. 뿌리 없는 자유는 오래가지 못한다. 책임 없는 권리는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역사를 지운 사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책임이 있는 자리에는 그에 걸맞은 엄격한 책임과 검증이 따라야 한다. 대한민국 정상화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잘못 버린 것은 되찾고, 잘못된 것은 고치며, 뿌리와 책임을 현대적으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호주제와 본적제, 개인책임 원칙과 자동차 번호판 지역표시제를 다시 국민적 토론의 장에 올려놓는 것. 나는 그것이 대한민국 정상화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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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9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친박에서 멀박으로, 친윤에서 비윤으로, 부정선거에서 부실선거로… 박쥐같은 윤상현의 정치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말솜씨도, 화려한 경력도 아니다. 일관성이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같은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 했던 말을 권력이 사라진 뒤에도 반복할 수 있는가.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에게 했던 약속을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킬 수 있는가. 이 기준으로 윤상현 의원의 정치 행보를 바라보면 적지 않은 의문이 남는다. 친박에서 멀박으로. 친윤에서 비윤으로. 그리고 이제는 부정선거에서 부실선거로. 정치적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표현과 위치도 달라지는 모습에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윤상현의 정치에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존재하는가. 부정선거를 말하던 정치인이 이제는 ‘부실선거’를 말한다 선거관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과 실제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행정착오 하나가 발견됐다고 해서 곧바로 전체 선거가 조작됐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오류 역시 경계해야 한다. 선거법이 정한 절차가 반복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것을 단순한 ‘부실’이라는 말 한마디로 덮을 수도 없다. 선거는 결과만 맞으면 되는 행정업무가 아니다. 투표용지 관리부터 선거인명부, 투표자 수 확인, 투표함 관리, 개표와 집계까지 하나하나의 절차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이유가 있다. 선거의 신뢰는 결과 이전에 절차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절차에 문제가 발견됐다면 국회의원이 할 일은 문제 제기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조사하면 된다. 전산기록을 확인하면 된다. 투표자 수와 집계자료를 대조하면 된다. 선관위 관계자를 불러 책임소재를 밝히면 된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면 국민에게 자료를 보여주면 되고,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책임자를 처벌하면 된다. 그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100% 부정선거냐’는 질문은 본질을 흐린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선거가 100% 조작됐다는 것이냐”고 몰아붙이는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 왜 반드시 100%여야 하는가. 한 선거에서 불법행위가 일부라도 있었다면 그 행위가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 반대로 절차상 오류가 있었다고 해서 선거 전체가 조작됐다는 의미도 아니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100%냐 0%냐’가 아니다. 어떤 위법이나 오류가 있었는가. 그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 세 가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국민에게 100%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국가기관의 자료와 시스템을 조사하지 않는다면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국민에게 수사기관 수준의 입증능력을 요구하기 전에, 조사권을 가진 정치권과 국가기관이 먼저 검증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관심을 보이고, 필요 없어지면 거리를 두는 정치인가 더 큰 문제는 윤상현 의원의 정치적 태도를 둘러싼 논란이다. 민경욱 전 의원은 윤 의원이 자신이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할 당시 오랫동안 거리를 두다가 어느 시점에는 관련 인사들을 의원실로 불러 장시간 설명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민 전 의원이 전한 내용이 모두 사실인지는 윤상현 의원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만약 정치적 필요가 생겼을 때 부정선거 문제에 접근했다가 필요성이 사라진 뒤 다시 거리를 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것은 부정선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다. 정치인이 특정 지지층의 신념을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용했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새로운 자료를 보고 판단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설명해야 한다. 과거에는 왜 의혹에 귀를 기울였는가. 무엇을 확인했는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기에 판단이 달라졌는가. 그 설명이 없다면 국민은 입장 변화보다 정치적 계산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친박에서 멀박으로 윤상현이라는 정치인을 이야기할 때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빼놓기 어렵다. 한때 대표적인 친박계 정치인으로 불릴 만큼 박근혜 정부와 가까웠다. 그러나 정치 환경이 바뀌면서 그 관계 역시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치인이 특정 인물과 영원히 함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자신의 과거까지 지워버리듯 행동한다면 국민이 그 정치인의 신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권력이 강할 때 가까이 있고 권력이 약해지면 멀어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치는 바로 그런 순간에 사람의 본질을 보여준다. 친윤에서 비윤으로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반복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으로 평가받던 시기가 있었지만 정치적 환경과 당내 권력관계가 달라지면서 점차 거리를 두는 모습도 나타났다. 물론 대통령과 여당 의원이 모든 문제에서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잘못된 정책이라면 비판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책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입장이 달라졌는가이다. 정책과 원칙 때문에 달라진 것인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달라진 것인지 국민은 결국 행동을 통해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반복될수록 의혹은 커진다. 친박에서 멀박으로. 친윤에서 비윤으로. 부정선거에서 부실선거로. 하나하나만 보면 정치적 변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가 계속 같은 방향으로 반복된다면 다른 이름이 붙기 시작한다. 기회주의다. 보수정치가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정치다 대한민국 보수정치의 위기는 단순히 선거에서 몇 번 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보수정당이 자신의 지지층에게조차 신뢰받지 못하게 된 것이 더 큰 문제다. 선거 때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한다. 당대표 선거 때는 보수 지지층을 찾는다. 위기가 오면 대통령을 지킨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위치에 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결국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정치인이 오늘 한 말을 내일 뒤집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보수정치가 다시 살아나려면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신뢰다. 그리고 신뢰의 출발점은 일관된 원칙이다. 선거 문제의 답은 간단하다. 끝까지 조사하라 부정선거냐 부실선거냐를 말싸움으로 결정할 이유가 없다. 자료를 보면 된다. 의혹이 제기된 선거구의 선거인명부를 확인하라. 투표자 수와 실제 투표지 수를 대조하라. 투표율 입력과 수정 기록을 공개하라. 투표용지의 발급·회수·보관 과정을 확인하라. 전산시스템 로그를 조사하라. 문제가 없으면 없다는 사실을 원자료로 입증하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책임자를 처벌하고 제도를 고치면 된다. 그게 전부다. 국민이 원하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확인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선거의 신뢰는 “문제없다”는 정치인의 한마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에서 만들어진다. 윤상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변신이 아니다 윤상현 의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부정선거론자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다시 다가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설명하는 일이다. 과거 부정선거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관련 인사들과 만났다면 무엇을 들었는가. 당시와 지금의 판단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리고 선관위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를 어디까지 조사할 생각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치인이 입장을 바꾸는 순간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결국 가장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쥐정치는 결국 어느 편에서도 신뢰받지 못한다 박쥐는 상황에 따라 어느 쪽에도 붙을 수 있지만 결국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신뢰받지 못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권력에 붙고 내일의 권력을 찾아 움직이는 정치인은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치적 자산 하나를 계속 잃는다. 신뢰다. 정치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의 기준이 정치적 생존이라면 그것은 소신정치가 아니다. 친박에서 멀박으로. 친윤에서 비윤으로. 부정선거에서 부실선거로. 변화가 너무 화려하다. 이제 윤상현 의원이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또 다른 변신이 아니다. 불리하더라도 지키는 하나의 원칙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윤상현은 결국 캄캄한 박쥐동굴속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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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10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전남·광주 독자적 대입제도 좋다, 대신 전남·광주 대학에만 진학해라

이재명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예로 들며 지역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대학입시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표면적인 명분은 지역 교육 자율성을 확대하고 지방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제안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 조건은 명확해야 한다. 전남·광주가 대한민국의 공통 대입제도와 다른 독자적 입시제도를 시행하겠다면, 그 제도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전남·광주 소재 대학에만 진학하도록 해야 한다. 독자적 규칙을 선택했다면 그 결과도 스스로 책임져라 지방자치의 기본 원칙은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다. 전남·광주가 지역 환경에 맞춰 수능 비중을 줄이든, 면접을 강화하든, 지역 고교와 대학을 연계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은 자유다. 그리고 그 제도를 전남대, 조선대 등 해당 지역 대학들이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전남·광주 학생에게 별도의 규칙을 적용하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전국 대학에 지원하게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대학을 놓고 경쟁하는데 누구는 전국 공통 기준을 따르고 누구는 특정 지역만의 별도 규칙을 적용받는다면 공정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기준은 간단하다. 독자 입시제도를 선택하면 전남·광주 대학에 진학하고, 다른 시·도 대학에 지원하고 싶다면 다른 국민과 동일한 전국 공통 입시기준으로 경쟁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공정하다. 지방대를 살린다면서 서울 대학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주어서는 안 된다 제도의 명분이 ‘지방대 경쟁력 강화’라면 정책 목적과 수단이 일치해야 한다. 지방대를 살리기 위한 제도를 이용한 학생이 서울 대학으로 빠져나가도록 허용한다면 정책 목적 자체가 흔들린다. 진짜 지방대를 살리려면 좋은 교수진과 연구시설을 갖추고, 지역 기업과 일자리를 연계해 학생들이 스스로 지역 대학을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력이 갖춰지면 다른 지역 학생들이 전남·광주 대학을 찾아오게 된다. 서울 진학을 위한 특별통로를 만드는 것은 지방대 육성이 아니다. 지방대 경쟁력은 입시제도의 예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 연구역량, 취업기회, 지역산업과의 연계에서 나와야 한다. 지방자치의 문제를 고치기보다 특례를 더 늘리는 방향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방만한 재정운영, 선심성 행정, 지역 토호세력과 정치권의 유착 논란, 중복사업과 보여주기식 개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 등 여러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제의 구조와 효율성 자체를 다시 점검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가 특별시·특별자치·행정통합과 각종 지역특례를 계속 확대하고, 이제 대학입시까지 지역별로 다른 제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국민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의 적정한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특정 지역에 특례가 계속 중첩된다면 정치적 편중 의혹은 피하기 어렵다 전남·광주는 오랫동안 민주당의 핵심 정치적 기반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독자 입시제도 제안 자체를 정치적 특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정 정치세력의 핵심 지지지역에 행정·교육·재정 특례가 반복적으로 집중된다면 다른 지역 국민들이 형평성과 정치적 편중을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특례 조치가 5·18 유공자와 자녀들에 대한 각종 지원·예우 제도를 둘러싸고 제기돼 온 특혜 논란처럼, 또 다른 지역 특혜의 통로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특정 지역에 예외적인 정치·행정·교육 특례가 계속 중첩된다면, 전남·광주가 대한민국 안에서 사실상 별도의 특권적 지위를 갖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지역 편중이 반복될수록 국민 사이에서는 이른바 ‘전라민국’ 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 자체가 아니라, 왜 국민 일부가 그런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게 되는지를 정치권이 돌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자치 강화를 넘어 ‘자유대한민국 해체’로 가는 것은 아닌가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강한 의문을 갖는다. 지역별로 다른 교육제도를 만들고, 지역별로 행정특례를 확대하고, 재정과 복지까지 서로 다른 예외를 누적시킨다면 대한민국의 공통된 국가제도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은 입시다. 내일은 복지일 수 있다. 그다음은 세금, 노동, 주택, 행정일 수도 있다. 각각 하나씩만 보면 사소한 지역특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예외가 수십 개, 수백 개 쌓이면 결국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거주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제도와 권리를 적용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지방분권 강화를 넘어 자유대한민국의 공통 기반을 허무는 국가 해체적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한다. 이재명 개인의 내면적 목적이 실제로 ‘대한민국 해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말보다 정책의 결과로 평가받는다. 지역별 특례가 국가의 통합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공통제도를 계속 분절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혜 논란을 피하려면 전국에 동일하게 허용하라 정부가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전남·광주에 주는 교육자치 권한을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충청, 강원, 제주 등 전국 어디에나 동일하게 허용하면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혜택과 책임 역시 해당 지역 안에서 완결되도록 하면 된다. 전국 어디서든 선택할 수 있는 제도라면 지방자치다. 특정 지역에만 허용된다면 특혜 논란이 생긴다. 특정 지역만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서 그 혜택을 전국으로 확장한다면 공정성 논란은 더 커진다. 대한민국은 지역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남·광주만의 나라가 아니다. 부산도, 대구도, 충청도도, 강원도도, 제주도도 모두 하나의 대한민국이다. 지역 특성을 살리는 것은 필요하다. 지방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분권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공통적인 제도와 국민의 공정한 경쟁조건까지 지역별로 쪼개서는 안 된다. 입시, 복지, 세금, 노동, 행정 등 국가적 공통 기준이 하나씩 무너지면 국가의 제도적 통합성도 함께 약해진다. 전남·광주 독자적 대입제도, 좋다. 대신 그 제도의 혜택과 책임도 전남·광주 안에서 100% 완결하라. 독자적인 지역 입시를 선택했다면 전남·광주 대학에서 그 성과를 증명하고, 다른 시·도 대학에 진학하려면 대한민국 모든 학생과 동일한 공통 기준으로 경쟁하라. 그것이 자치와 특혜를 가르는 선이며, 지방분권과 국가 해체적 분절을 가르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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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익
김상익•10일 전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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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치킨•홍보됨

`이제,무게로 먹는다` UFC chicken.

관리자
관리자•11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경기도 재정위기, 이재명,김동연.추미애 누구의 책임인가

취득세 의존 구조 위에 쌓인 좌파 포퓰리즘 지출과 지방채 돌려막기의 결과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화하면서 경기도 재정위기의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추미애는 전임 도정이 지방채와 각종 기금을 끌어다 쓰며 문제를 뒤로 미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최근 한두 해의 예산 운영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경기도 재정위기의 본질은 세 가지 문제가 장기간 겹친 결과에 가깝다. 첫째는 부동산 취득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세입 구조다. 둘째는 복지와 현금성 지원, 국비 연계 사업처럼 한번 늘어나면 쉽게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다. 셋째는 세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기존 사업을 구조조정하지 않고 지방채와 기금으로 부족분을 메운 재정 운영 방식이다. 여기에 이재명 전 경기지사 시절 추진된 대규모 보편지원과 지역화폐 중심의 확장재정이 경기도의 재정 완충력을 약화했다는 책임론도 피하기 어렵다. 경기도 재정은 왜 갑자기 흔들렸나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큰 지방정부이지만 세입 구조는 생각보다 취약하다. 도세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거래에 따라 들어오는 취득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할 때는 세수가 크게 늘어나지만, 거래가 위축되면 세입도 급격히 줄어든다. 기업과 첨단산업이 경기도에 들어와도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법인지방소득세는 주로 시·군에 귀속된다. 경기도는 교통·용수·전력·산업기반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세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구조다. 반면 지출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복지사업, 국비 매칭사업, 시·군 조정교부금, 교통과 안전 관련 사업은 법적·정치적으로 축소가 어렵다. 고령인구 증가와 각종 복지 수요까지 겹치면서 지출 부담은 자동으로 커진다. 세입은 경기 상황에 따라 출렁이는데 세출은 계속 증가하는 구조다.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고 기금을 일반재원처럼 사용하면 당장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세입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다음 해에는 더 많은 빚과 더 큰 구조조정이 필요해진다. 지금의 경기도가 바로 그 한계점에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 도정의 포퓰리즘 정책은 책임이 없는가 이재명이가 경기지사 재임기에는 전 도민 재난기본소득, 지역화폐 확대, 청년기본소득을 비롯한 이른바 기본소득 계열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재난지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피해가 컸고, 지역경제가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가 단기 소비를 늘리고 지역 상권을 지원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정책의 필요성과 재정 운용의 적절성은 별개의 문제다. 전 도민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는 보편적 현금지원은 소득과 피해 정도를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지급 속도와 정치적 체감 효과는 크지만, 제한된 재원을 가장 피해가 큰 계층에 집중하는 방식보다 재정 효율성이 낮을 수 있다. 또한 현금성 지원은 도로나 철도, 산업기반시설처럼 장기간 남는 자산을 만들지 않는다. 소비가 끝나면 재정 효과도 소멸한다.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같은 방식의 지원을 반복하면 새로운 고정지출에 가까운 정치적 기대가 형성될 수 있다. 특히 재난관리기금과 재해구호기금 등 비상시에 사용해야 할 재원을 대규모로 투입했다면, 이후의 경기침체나 재난에 대응할 완충 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재명 도정의 정책이 현재 재정위기를 직접 발생시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기도 재정의 체력과 비상 여력을 약화한 중장기적 책임은 분명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출 규모보다 지출 구조였다 포퓰리즘 논쟁에서 흔히 놓치는 부분은 단순히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출이 일회성인지, 지속 가능한지, 새로운 세입이나 자산을 만들어 냈는지다. 경기도가 일시적으로 큰돈을 쓰더라도 이후 세수가 늘어나거나 인프라 자산이 남는다면 장기적인 재정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현금성 지원과 소비촉진 사업에 재원을 집중하면서 세입 기반을 넓히지 못했다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악화된다. 이재명 도정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정책은 정치적 상징성이 강했다. 정책 수혜자가 넓고 체감도가 높아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경기도 재정의 장기 안정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그 정책이 끝난 뒤 경기도에 어떤 지속적인 세입이 남았는가. 지역경제의 생산성과 고용을 구조적으로 높였는가. 추가 지출 없이도 정책 효과가 유지됐는가. 경기침체에 대비할 기금과 유동성을 충분히 남겨뒀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성과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동연 도정의 직접적인 관리 책임도 크다 현재의 재정 공백에 대한 행정적 책임은 이재명 도정에만 돌릴 수 없다. 이재명이는 2021년 경기도지사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민선 8기 김동연 도정이 수년간 예산을 운영했다. 세입 감소와 기금 소진이 확인된 뒤에는 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신규 사업을 억제하며 중기 재정계획을 다시 세웠어야 한다. 그러나 지방채 발행과 기금 활용을 통해 기존 지출을 계속 유지했다면 이는 현재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특히 일부 사업을 1년치가 아닌 9개월분만 편성하거나, 다음 집행부가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만 지속할 수 있도록 예산을 구성했다면 정상적인 재정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가계로 비유하면 월급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생활비를 줄이지 않고 예금과 대출로 지출을 유지한 것과 같다. 처음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예금이 바닥나고 대출 한도가 차면 한꺼번에 위기가 표면화된다. 따라서 김동연 도정은 이재명 도정에서 시작된 사업 가운데 어떤 사업을 유지했고, 어떤 사업을 확대했으며, 세입 감소에 대응해 어떤 구조조정을 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추미애 지사의 책임론에도 정치적 계산은 섞여 있다 추미애 지사가 재정 비상을 선언하고 전임 도정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집행부가 재정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새 도지사가 취임 직후 전임자를 비판하며 재정위기를 부각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반복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재정 악화의 책임을 전임 집행부에 돌리면 공약 축소와 예산 삭감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발표가 실제 재정개혁인지 정치적 책임 전가인지는 앞으로의 조치로 판단해야 한다. 업무추진비와 행사비를 줄이는 상징적인 대책만 내놓는다면 재정위기의 규모에 비해 효과는 제한적이다. 진짜 개혁이라면 신규 공약사업과 산하기관, 보조금 사업, 중복 복지사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지출 재검토가 필요하다. 동시에 채무 규모와 상환 일정, 기금별 잔액, 연도별 세입 전망, 민선 7기와 8기의 신규 사업 부담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 소재를 정치적 주장과 숫자로 구분할 수 있다. 책임은 세 단계로 구분해야 한다 현재 경기도 재정위기의 책임을 정확히 나누면 다음과 같다. 이재명 도정의 책임은 재정 완충력 약화에 있다. 보편적 현금지원과 지역화폐, 기본소득 계열 사업을 확대하면서 기금과 가용재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단기적인 정책 체감도는 높였지만 장기 재정의 여유를 줄였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김동연 도정의 책임은 문제의 연장과 현실화에 있다. 세입 감소가 명확해진 이후에도 과감한 구조조정보다 지방채와 기금으로 기존 지출을 유지했다면 현재의 유동성 부족과 예산 공백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재정 제도의 책임은 구조적 취약성에 있다. 취득세에 의존하는 도세 구조, 기업 유치 비용과 세수 귀속의 불일치, 국고보조사업에 따른 지방비 부담은 경기도가 자체 절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세 책임 가운데 하나만 강조하면 재정위기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포퓰리즘이 남기는 가장 큰 문제는 ‘사업’이 아니라 ‘기대’다 포퓰리즘 정책의 장기적인 위험은 한 번 지급된 현금의 액수에만 있지 않다. 국민에게 새로운 지원이 제공되면 다음 선거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요구하는 기대가 생긴다. 정치인은 기존 혜택을 축소하기 어렵고, 오히려 경쟁적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한다. 세수가 줄어도 지출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도가 재정 여력이 좋을 때 시작한 사업이라도 경기가 나빠졌을 때 중단할 수 없다면 사실상 고정지출이 된다. 처음에는 한시적 정책이었지만 정치적 권리처럼 굳어지면 재정 구조는 경직된다. 이재명 도정에서 시작된 기본소득과 보편지원 정책의 가장 큰 재정적 유산도 개별 사업비보다 이런 정치적 기대일 수 있다. 이후 도정이 이를 축소하지 못하고 다른 지원사업까지 추가했다면, 책임은 정책을 시작한 사람과 계속 확대한 사람 모두에게 있다. 재정위기의 진짜 본질 경기도 재정위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동산 거래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세입 구조 위에서 현금성·복지성 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세입이 줄어든 뒤에도 사업 구조조정 대신 지방채와 기금으로 부족분을 메우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재명 전 지사의 확장적 정책은 이 구조를 악화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재정의 완충 장치를 약화하고 보편지원에 대한 정치적 기대를 키웠다는 점에서 책임이 작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현재의 위기가 이재명 도정만의 결과는 아니다. 이후 도정이 지출 구조를 바로잡지 못했고, 낡은 지방세 제도도 그대로 유지됐다.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이재명 도정이 포퓰리즘성 확장재정으로 경기도의 재정 체력을 약화했고, 김동연 도정이 구조조정 없이 지방채와 기금으로 문제를 연장했으며, 취득세 중심의 세입 구조가 위기를 증폭시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보다 재정 장부 공개다 경기도는 민선 7기 이후 연도별 채무와 기금 잔액, 현금성 지원사업 총액, 지역화폐 관련 도비 부담, 민선 8기 신규 사업, 지방채 사용처와 상환 일정을 공개해야 한다. 또한 각 사업을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유지해야 할 필수사업, 효과를 검증한 뒤 조정할 사업, 재정 상황상 중단하거나 폐지할 사업이다. 재정위기 상황에서도 모든 공약과 복지사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고위공직자 업무추진비나 행사비를 줄이는 것만으로 수천억 원의 부족분을 해결할 수도 없다.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결정을 피하면서 재정개혁을 말한다면 또 다른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경기도 재정위기는 단순한 회계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정치적 인기를 위해 얼마나 쉽게 사용해 왔는지, 세입이 줄었을 때 누가 책임 있게 지출을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방정부 운영의 시험대다. 이재명 전 지사의 책임도, 김동연 전 지사의 책임도 숫자로 검증해야 한다. 추미애 지사 역시 전임자 비판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공약과 사업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 재정 비상 선언도 다음 도정에 부담을 넘기기 위한 또 하나의 정치적 선언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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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바짝_혜사랑
정신바짝_혜사랑•13일 전

XXXX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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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13일 전

검사의 직접·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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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13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미국 뒤에 숨은 거대 권력—우한연구소와 A-WEB 시스템이 보여주는 공통의 그늘 ​통제된 기술, 불투명한 자금, 그리고 사라진 국경…

인류는 누구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코로나19 팬데믹과 세계 각국의 선거 공정성 논란. 전혀 별개의 분야처럼 보이는 이 두 대형 이슈에는 이상하리만치 닮아있는 하나의 명확한 시스템적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글로벌 거대 권력의 뒤에 숨은 자금과 기술,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불투명한 통제 구조’**다.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앤서니 파우치 전 NIAID 소장이 111번이나 묵비권을 행사하며 숨기려 했던 진실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 정부의 자금이 국경을 넘어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위험한 기능획득(Gain-of-Function) 연구로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가 전 세계 인류의 자유와 생명을 위협한 대재난으로 이어졌다는 정황이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연구소였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과 글로벌 보건 권력의 거대한 자본과 승인이 결탁해 있었다.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를 흔든 전자투개표 시스템 논란 역시 동일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한국의 A-WEB(세계선거기관협의회)을 통해 공적적개발원조(ODA)라는 명목으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해외 여러 국가에 보급된 전자개표 및 투표 시스템은, 현지에서 기술적 결함과 부정선거 논란, 그리고 심각한 정치적 소요를 유발했다. 이 과정 역시 공공의 이름 뒤에 숨은 거대 자본과 국제적 네트워크의 개입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두 시스템이 공유하는 세 가지 핵심 구조 ​이 두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이나 특정 국가의 무능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두 사안이 완벽히 동일한 통제 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글로벌 거대 자본(딥스테이트)'이라는 진짜 배후 우한연구소 사례는 미국 보건 당국과 거대 제약 자본이, A-WEB 사례는 공적 기구의 탈을 쓴 국제 네트워크와 정치 권력이 전면에 나섰다. 국적을 초월하여 움직이는 이 거대 세력은 국가라는 울타리를 넘어 자신들의 의도와 이권에 맞게 시스템을 설계하고 작동시켰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민의 통제를 벗어난 '기술과 정보의 독점' 바이러스 연구의 위험성이나 전자개표 시스템의 내부 로직은 일반 국민이 쉽게 검증할 수 없는 '블랙박스' 영역이다. 이들은 전문성과 과학, 시스템의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중의 접근과 검증을 철저히 차단한 채, 공포와 통제를 유도하거나 정권의 정통성을 조작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책임의 외주화와 회피 문제가 터지면 미국은 중국을, 중국은 미국을 탓하거나, 국제기구와 개발도상국 현지 기관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정작 판을 짜고 자금을 댄 진짜 주역들은 법적·도덕적 책임망을 빠져나간다. 파우치의 111번의 묵비권과 대통령 사면권 행사는 이들이 만든 완벽한 '법적 방어막'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포와 조작으로 움직이는 세계, 진실을 향한 역사적 추적 ​인류의 생명과 직결된 '보건'과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이 두 가지 핵심 축이 특정 거대 세력의 기획과 통제 아래 놀아났다는 의심은 이제 단순한 음모론이라는 단어로 덮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 세계의 깨어있는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 권력이 설계한 통제망 속에서 자유와 권리를 침해당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강요하며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긴 제약 자본과 보건 권력, 그리고 투표의 정당성을 흔들며 민의를 왜곡하려 한 정치·기술 세력의 결탁은 반드시 끝까지 파헤쳐져야 한다. ​"누가 자금을 대었는가." "누가 이 기술의 진짜 통제권을 쥐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이 모든 재난과 혼란으로 이익을 취했는가." ​그들이 111번의 묵비권으로 입을 다물고, 복잡한 국제 기구의 뒤로 숨는다 할지라도 역사의 질문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거대 권력의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을 온전히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다시는 인류 전체가 거대 세력의 통제와 공작에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가장 강력한 단죄이자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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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바짝_혜사랑
정신바짝_혜사랑•1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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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자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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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바짝_혜사랑
정신바짝_혜사랑•1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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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14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111번의 묵비권—합법이지만 미국민과 인류 앞에 떳떳한가

코로나19의 기원과 우한연구소 지원 의혹, 백신 강제 정책의 책임을 끝까지 밝혀야 한다 코로나19는 단순한 감염병 사태가 아니었다. 전 세계가 전례 없는 공포에 휩싸였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사회와 경제는 장기간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자영업자는 생계를 잃었고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야 했으며, 가족과 이웃은 서로를 잠재적 감염원으로 의심해야 했다. 백신 접종 이후 이상 반응과 장기적인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이처럼 인류 전체를 뒤흔든 대재난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열린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대외적으로 대표했던 앤서니 파우치 전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수정헌법 제5조를 근거로 무려 111차례나 답변을 거부했다. 묵비권 행사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권리다. 따라서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사실만으로 범죄를 자백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률적 권리와 공직자의 도덕적·역사적 책임은 전혀 다른 문제다. 파우치는 코로나19 사태 당시 미국의 핵심 방역 자문가이자 정부 대응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전 세계 국가 지도자와 언론은 그의 발언을 사실상 과학적 권위로 받아들였다. 국민에게 마스크와 거리두기,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그런 인물이 코로나19의 기원과 우한연구소 지원, 기능획득 연구, 의회 증언의 진실성에 관한 질문 앞에서 사실상 모든 답변을 거부했다면 미국민과 전세계인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정책을 펼쳤고 숨길 것이 없다면, 왜 111번이나 침묵 뒤로 숨었는가. 이번 청문회의 핵심은 파우치가 코로나19를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정하는 데 있지 않다.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고의적 공격설 역시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백신과 치료제를 통해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윤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바이러스를 고의로 확산시켰다고 확정하는 것 또한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실과 의혹을 정확히 분리해야 책임자들이 빠져나갈 공간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연구비가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와 연결된 연구에 사용됐는지, 그 연구가 어느 수준의 위험성을 가졌는지, 파우치와 관련 기관이 이를 의회와 국민에게 정확하게 설명했는지, 코로나19 초기 연구소 관련 사고 가능성을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배제했는지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연구소 유출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이 곧 “파우치의 모든 설명이 진실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바이러스의 최종 기원과 별개로 연구비 지원 과정, 감독 책임, 내부 문서, 과거 의회 증언의 정확성은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파우치에게 예방적 사면을 부여한 사실도 국민적 의심을 키웠다. 사면은 법적으로 가능한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코로나19 책임 규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 인물에게 미리 법적 보호막을 제공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더구나 파우치는 사면을 받은 이후에도 청문회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파우치 측에서는 지금 답변했다가 새로운 위증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법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방어 전략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사면과 묵비권이 책임을 피하기 위한 이중 방패로 보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분노하는 지점은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거대 권력과 다국적 제약사의 이해관계, 그리고 정부·언론·기업이 동시에 가한 압박 구조다. 코로나19 당시 세계 여러 나라는 유사한 방식으로 백신 접종을 사실상 사회생활의 필수 조건처럼 운영했다.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식당과 다중이용시설 출입이 제한됐고, 직장과 학교, 여행과 의료 이용에서도 각종 불이익과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도 방역패스와 각종 제한 조치가 시행되면서 많은 국민이 사실상 접종을 강요받았다고 느꼈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백신의 효과를 강하게 강조했지만, 이상 반응과 장기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쉽게 배척됐다. 접종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비과학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렸고, 일부 문제 제기는 충분한 토론과 검증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시기 정부의 방역 정책으로 식당 출입과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백신의 안전성과 장기적 영향에 의문을 가졌고,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접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 그 판단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 정답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백신이 중증과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연구도 존재하며, 개인의 연령과 건강 상태에 따라 위험과 편익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정부가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와 실질적인 선택권을 제공했는지, 접종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신속하고 정당한 보상을 했는지, 제약회사와 체결한 계약과 면책 조건, 비공개 협약을 투명하게 공개했는지는 지금이라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이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팬데믹 대응이 국민의 공포를 이용한 과도한 통제였으며 거대 권력과 제약 자본의 이해관계가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음모론적 단정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자료와 독립적인 조사다. 누가 어떤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는가? 위험한 연구를 누가 승인하고 감독했는가? 코로나19 초기 어떤 정보가 정부 내부에서 공유됐는가? 연구소 관련 사고 가능성을 누가, 어떤 근거로 축소했는가? 백신 계약에는 어떤 면책과 비공개 조항이 있었는가? 이상 반응 피해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모든 의혹을 무조건 ‘음모론’으로 매도하며 넘어가는 것은 진실 규명을 거부하는 태도다. 이번 청문회는 파우치의 유죄를 법적으로 입증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을 대표했던 인물이 국민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질문에 111번이나 답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공적 신뢰를 사실상 무너뜨렸다. 파우치와 중국 우한연구소, 미국 정부 연구비의 연결 의혹을 규명하는 일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의 문제다. 백신 정책과 방역 제한, 제약회사의 이익 구조, 언론과 과학계가 반대 의견을 어떻게 다뤘는지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생업을 잃은 국민들, 백신 이상 반응을 호소하는 피해자들 앞에서 “과거의 일”이라며 넘어갈 수는 없다. 묵비권은 개인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111번의 침묵으로 역사의 질문까지 막을 수는 없다. 국민은 거대 권력이 만들어 낸 공포와 일방적 통제에서 벗어나, 모든 연구비와 내부 문서, 의사 결정 과정과 제약회사 계약의 공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과거를 처벌하기 위한 일만이 아니다. 다시는 국가와 제약 자본, 과학 권력이 국민의 공포를 이용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 규명이자 재발 방지 장치다. 국민은 묻고 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왜 공개하지 않았는가. 누가 이 재난으로 이익을 얻었는가. 그리고 누가 피해자들에게 책임질 것인가. 111번의 묵비권은 법적으로 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국민과 전 세계인 앞에서 떳떳한 침묵은 아니다. 역사는 그 침묵 뒤에 감춰진 사실과 책임을 끝까지 추적하고 기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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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관리자•15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국경을 넘어 사랑으로… 세계가 선택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국제결혼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인이 찾아오는 나라가 되었고, 국제커플 역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닌 자연스러운 사회의 한 모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거리의 카페와 식당, 공원은 물론이고 유튜브와 SNS에서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하는 커플 콘텐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한국인 여성과 외국인 남성이 함께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영상들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국가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K-팝과 K-드라마, K-푸드를 중심으로 한 한류는 이제 문화 콘텐츠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 안정된 사회 시스템, 편리한 교통망, 우수한 의료 서비스, 높은 교육 수준, 그리고 눈부신 경제성장은 많은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을 '살고 싶은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찾아와 일하고, 배우고, 사랑을 시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유튜브 역시 이러한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인과 미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태국인, 러시아인, 프랑스인, 독일인, 브라질인 등 다양한 국적의 국제커플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의 콘텐츠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음식과 문화, 여행, 가족문화, 언어를 함께 배우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을 더욱 친숙하게 만드는 민간 문화외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대한민국이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사회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방성과 국제화가 곧 경계심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가의 발전은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국가의 안전과 주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해 외국인의 불법 체류, 산업기술 유출, 간첩 활동, 조직범죄 등에 대해 엄격한 법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국제결혼과 국제교류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공과 같은 일부 국가가 자국민의 해외 진출을 전략적으로 장려하거나 해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국제사회에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만약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국가안보를 침해하거나 불법적인 활동을 한다면, 국적과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개방성은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강점이다. 하지만 그 자유와 개방성이 악용되어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국제커플이 늘어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한류를 비롯한 대한민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 눈부신 경제성장,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안전한 치안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국경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만큼은 결코 타협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열린 나라여야 하지만, 동시에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강한 나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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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6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검찰청은 폐지 수순에 들어가고, 3군 사관학교 통합 논의까지 나오는데도 침묵하는 검사와 장교들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다

국가기관은 권력이나 예산으로 연명하는 집단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 국가의 헌법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존재 이유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법치와 국방을 떠받쳐 온 두 축이 동시에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78년 동안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검찰청은 이제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대폭 축소됐고, 조직 자체도 새로운 체계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수사 과정의 오류를 바로잡고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방 분야도 마찬가지다. 각 군의 정체성과 장교 양성 체계의 근간인 3군 사관학교 통합 논의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안보의 뿌리를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충분한 공론화와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처럼 법치와 안보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대한 변화 앞에서 정작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할 검사들과 각 군 장교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있다.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렇게 침묵한다고 해서 자신들만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검사들은 그동안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를 자처해 왔다. 장교들은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사명감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조직의 존립과 국가 시스템의 근간이 바뀌는 순간,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설명하고 필요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공직자로서의 책임이 아닌가. 자신들의 조직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데도 "이것은 국가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토론을 요청하는 당당한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 현실은 안타깝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특정 정당을 위해 행동하지 말라는 원칙이지, 국가 시스템의 변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법치주의와 국가안보라는 핵심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우려를 전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공직의 책임이다. 지금 이어지는 침묵은 신중함으로 보이기보다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 조직의 존립보다 승진과 보직, 인사만 먼저 고려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준다면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는 더욱 약해질 것이다. 더 이상 침묵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조직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법치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의견이라면 직을 걸 각오로 말할 수 있는 용기 또한 공직자의 책무다. 국민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조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책임 있게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국가기관을 원한다. 법치와 안보의 중대한 변화 앞에서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국민은 그 조직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될 것이다. 국가기관의 존재 가치는 침묵이 아니라 책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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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7일 전

[싸이킹 프라임 칼럼] 개 식용 종식법, 이른바 '김건희 관심법'의 역설 흑염소가 날벼락을 맞았다

개 식용 금지법은 동물복지와 국제사회의 시선을 고려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선의만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지금 개 식용 금지 이후 나타난 현실은 정부가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했는지 되묻게 한다. 최근 보양식 시장에서는 개고기 소비층의 상당 부분이 흑염소로 이동하면서 염소 도축 물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수요 증가에 비해 도축 인프라와 위생 관리 체계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부 도축 현장에서는 법정 절차를 충분히 지키지 않은 작업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냉장 관리와 유통 과정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동물복지를 앞세워 추진한 정책이 또 다른 축종에서 새로운 동물복지와 위생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개 식용만 금지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장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하나의 소비가 사라지면 다른 소비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러한 소비 이동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정작 정부는 도축시설 확충과 위생관리, 축산업계 지원 대책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염소 산업은 전문 도축시설이 부족한 구조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수요는 결국 일부 현장에 과도한 부담을 안겼고, 관리 사각지대를 키웠다. 정책은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사회적 변화까지 책임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개는 보호받았지만 흑염소는 더 많은 도축 압력에 놓였고, 현장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이것이 과연 정책 입안자들이 기대했던 결과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물복지는 특정 동물만을 위한 선택적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는 보호하면서 다른 가축의 복지와 위생 문제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일관된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 정부는 이제라도 개 식용 금지 정책 이후 나타난 부작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증가한 염소 수요에 맞는 도축 인프라 확충, 위생관리 강화, 유통체계 개선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정책은 박수받을 때보다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 진정한 평가를 받는다. 개 식용 종식법의 가장 큰 역설은, 결국 아무 죄 없는 흑염소가 가장 큰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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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일: 2026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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