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이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애국우파가 아니다.
본인 스스로 과거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하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군부독재정권이라고 말했으며, 김대중을 존경하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른바 ‘노사모’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이것은 누군가가 전한길에게 뒤집어씌운 정치적 과거가 아니라 그가 직접 공개한 자신의 정치적 이력이다.
그랬던 사람이 어느 날 윤석열 탄핵 반대의 선봉에 등장했다. 태극기를 들고 자유를 외쳤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으며, 탄핵 반대 집회 단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자유우파 진영의 중심인물처럼 떠올랐다.
사람의 정치적 생각은 바뀔 수 있다. 노사모였던 사람이 보수가 될 수도 있고, 좌파 쪽에 있던 사람이 자유우파로 전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향했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과거가 지워지고 우파의 대표자 자격증까지 손에 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뒤늦게 들어온 사람일수록 말이 아니라 행동을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전한길에게서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입에서 쏟아지는 화려한 애국의 언어가 아니라 우파 진영에 들어온 이후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전한길을 지켜보며 반복해서 나오는 비판 가운데 하나가 있다. 애국행사든 집회든 자신이 등장하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중심에 서고, 자신이 길게 이야기하고, 결국 행사의 메시지보다 ‘전한길’이라는 개인이 더 부각되는 모습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올공풍선 국토대종주와 전한길 국토대장정 논란은 그래서 단순한 행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전한길이가 보여준 행동방식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건이다.
올공풍선 청년들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약 620km를 걸어 올라오는 국토대종주를 준비했다. 9월 15일 부산역을 출발해 10월 3일 서울에 입성하고,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역 시민들이 합류하는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이미 먼저 준비되고 있던 애국운동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전한길의 국토대장정이 등장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두 행사가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부산에서 서울로 향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전한길이가 올공풍선 국토대종주 계획을 사전에 들었고, 이후 별도의 국토대장정을 기획해 올공풍선보다 하루 먼저 출발했다는 주장이다.
이 선후관계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문제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미 청년들이 먼저 준비하고 있었다. 전한길이가 그 계획을 알고 정말 자유우파 전체를 생각했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자신의 유명세로 올공풍선을 홍보해주고, 수많은 구독자에게 알려주고, 필요하면 함께 걸으며 힘을 보태면 됐다.
그것이 연대다.
그런데 남들이 준비하던 계획을 먼저 접하고 비슷한 성격의 별도 행사를 만들어 오히려 하루 먼저 출발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남들이 닦아놓은 애국의 길에 힘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의 주인공 자리까지 자신이 차지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행사 하나의 욕심이 아니다. 전한길이가 우파 운동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들여다볼 문제다.
자신보다 작은 애국운동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카메라의 중심에 서고, 결국 모든 관심이 전한길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방식이다.
애국을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사용하는 것과 애국을 이용해 자신의 유명세를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한길이가 정말 자유우파 전체를 생각했다면 자신이 반드시 주인공일 필요가 없었다. 올공풍선 청년들이 주인공이어도 됐다. 자신은 뒤에서 밀어주면 됐다.
진짜 애국은 카메라 한가운데 서지 않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유튜브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조회수가 되고, 조회수는 구독자가 되며, 구독자는 영향력이 된다. 그 영향력은 다시 후원금과 유튜브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정치적 힘과 경제적 가치로도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애국운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애국의 개인 브랜드화’ 다.
대한민국을 위해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운동의 주인이 바뀐다. 태극기보다 유튜버의 얼굴이 커지고 대한민국보다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앞에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시민은 사라지고 팬덤만 남는다.
우파 국민들의 분노와 절박함이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구독자를 만들고, 구독자가 정치적 영향력을 만들고, 그 영향력이 다시 후원금과 유튜브 수익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애국과 장사의 경계가 어디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전한길을 둘러싼 이른바 ‘코인팔이’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문제다. 핵심은 애국을 외치며 확보한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파는 영향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래서 전한길이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노사모 출신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죄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 정치적 궤적을 걸어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우파 진영 한복판으로 들어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우파를 말하고, 자신의 팬덤과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자유우파 내부에서 나오는 ‘엔츄파도스’ 가능성에 대한 경계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한길이가 좌파에서 보낸 간첩이라는 증거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렇게 단정할 근거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런 경계 없이 우파의 중심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노사모 출신이라고 스스로 밝혔던 사람이 어느 날 우파 진영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이후 자신의 팬덤과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여기에 자신이 마이크와 카메라의 중심에 선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이번에는 먼저 준비되던 올공풍선 국토대종주 계획을 사전에 들은 뒤 별도의 국토대장정을 만들어 하루 먼저 출발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렇다면 자유우파가 해야 할 일은 맹목적인 환호가 아니라 검증이다.
전한길이가 실제 엔츄파도스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동을 놓고 그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경계하자는 주장까지 무조건 음모론으로 몰아붙일 이유도 없다.
진짜 전향했다면 앞으로의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자유우파 전체를 위한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작은 애국운동을 키워주면 된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대한민국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뒤로 물러설 수 있음을 보여주면 된다.
반대로 모든 운동의 중앙에 자신이 서야 하고, 모든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야 하며, 모든 애국운동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가치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든다면 자유우파는 그 사람의 말보다 행동부터 검증해야 한다.
좌파에서 놀러왔다고 우파의 주인 행세까지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좌파를 욕한다고 우파가 되는 것도 아니다. 태극기를 들었다고 애국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파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가장 크게 외친다고 자유우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의 본질은 말보다 행동에서 드러난다.
남들이 힘들게 준비한 애국운동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그 사람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진짜 애국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애국할 수 있다. 자신보다 작은 사람을 키워주고, 알려지지 않은 청년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줄 수 있으며,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돌아오지 않아도 대한민국에 도움이 된다면 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애국을 위해 전한길이가 존재하는 것인가.
전한길이를 위해 애국이 존재하는 것인가.
속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다. 그러나 행동은 볼 수 있다.
노사모 출신이었다가 지금 자유우파를 말하는 것은 전한길이의 선택이다. 진정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면 그것 역시 그의 자유다.
하지만 자유우파는 전한길이의 새로운 정치적 간판이 아니다.
더구나 자유우파 국민은 누구의 팬클럽도 아니고, 누구의 정치적 사병도 아니며, 누구의 후원금과 조회수를 만들어주는 고객 명단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공풍선 국토대종주와 전한길 국토대장정의 기획 선후관계가 중요하다.
올공풍선 국토대종주의 기획을 전한길이가 먼저 들었고, 그 뒤 유사한 국토대장정을 만들어 하루 먼저 출발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애국행사가 우연히 겹친 문제로 끝낼 수 없다.
남들이 닦아놓은 애국의 길마저 자신의 무대로 만들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반복된다면 자유우파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한 ‘관종 정치’만이 아니다. 우파 내부로 들어와 기존 운동보다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우파를 분열시키거나 기존 운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엔츄파도스’ 가능성까지 포함해 행동을 계속 검증해야 한다.
우파는 좌파만 경계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우파의 한복판에 들어와 우리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가장 크게 외치는 사람일수록 더욱 냉정하게 봐야 한다.
말보다 행동을 보고, 오늘의 간판만 보지 말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봐야 한다. 애국이라는 구호에 취하지 말고 그 뒤에서 누가 영향력을 얻고, 누가 돈을 벌고, 누가 주인공이 되는지를 봐야 한다.
자유우파는 누군가 뒤늦게 들어와 등에 올라타 자기 몸집을 키우라고 수십 년 동안 싸워온 사람들이 아니다.
좌파에게 속지 않는 것만으로는 자유우파를 지킬 수 없다.
우파의 옷을 입었다고 무조건 우리 편이라고 믿고,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박수치고, 유명하다고 앞자리를 내주는 순간 우파는 또 누군가의 발판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주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깨닫는다면 이미 늦는다.
그때 자유우파에게 남는 것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뿐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