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다시 보기
46일간의 정승화 천하 10.26 이후 12.12.까지 46일 동안은 정승화 천하였습니다. 최규하 권한 대행보다 더 막강한 실세가 정승화였습니다. 정승화는 이 권력을 선용하지 않고 세 가지로 악용하였습니다. 하나는 군법회의 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를 영웅으로 띄우면서 시해사건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권력행사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각하 시해 당시 시해장소 부근에 있었으면서도 시해현장에서 발생한 총소리가 각하를 시해하는 총소리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을 당시 그를 내사하고 있는 합수부에 강제로 주입시키려고 고성을 지르며 딱딱거렸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일선에 직접 개입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공화당 총재 김종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대통령에 출마하지 마시오] 저음을 깔아 명령했고, 이에 김종필은 깨갱하며 출마를 접었습니다. 전후방 고위 장군들을 소집해 놓고 [각하는 시해 당할 만해서 시해당했다]는 식의 노골적인 망발을 해서 예하 장군들로부터 면전 항의까지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이학봉 중령, “정승화를 체포합시다” 집요한 건의 정승화의 이런 저질적 불법행위를 계속 내사하던 수사단장 이학봉 중령은 전두환 소장에게 세 차례에 걸쳐 정승화를 체포하자는 건의를 올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두환 장군은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미루었습니다, 미루는 동안 정승화의 행패는 더욱 가관으로 치달았습니다. 김재규의 무죄를 암시하는 발표를 한 것입니다. 이에 이학봉 중령은 1979년 12월 6일, 전두환 장군에게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강력한 건의를 했습니다. 이에 전두환 장군은 오래 참았던 결심을 했습니다. “정승화를 체포하라, 체포날짜는 대령에서 진급하는 장군 명단을 발표하는 12월 12일로 하라. 내가 12월 12일, 오후 6:30에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서 정승화 채포건에 대해 재가를 건의할 것이다. 전례로 보나 사건의 위중함으로 보나 대통령은 즉시 재가를 할 것이다. 그러니 1월 12일 오후 7시, 나의 추가적인 명령 없이 자동적으로 7시에 정승화를 체포하라” 한남동의 전투 명령을 받은 보안사 수사단은 007 작전을 수행하듯 정교한 체포작전 계획을 짰습니다. 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의 한남동 공관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습니다, 겹겹이 설치된 방어벽을 뚫기가 참으로 어려워 정교한 작전이 동원됐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공관 정문을 뚫은 체포조 선두에는 허삼수 대령과 헌병 우경윤 대령이 섰습니다. 두 대령이 방어벽을 뚫고 정승화와 공관 응접실에서 마주했습니다. 두 대령의 예의 바른 동행 요청에 정승화는 [버럭]으로 일관했습니다. 부관을 부르고, 경호대장을 호출하여 “이놈들 내쫓으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이에 2층에 있던 정승화 아들이 계단으로 내려와 우경윤 대령을 향해 권총을 쏘았고, 육사 출신으로 헌병에서 신망이 높던 우경윤 대령이 그 총에 맞아 평생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보안사 수사관들이 총장의 부관과 총장의 경호대장에 권총을 여러 발 발사했고, 이들은 중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보안사 수사관들, ‘존경하는 우경윤 대령’이 큰대자로 쓰러진 것을 본 순간, 응접실의 거대한 유리창을 M16 개머리판으로 깼습니다. 거대한 유리가 동강나 깨져 내리는 소리가 참으로 요란했습니다. 한 수사관이 유리조각을 딛고 응정실로 들어갔습니다. 총구를 정승화의 목에 들이댔습니다. “이 개새끼 못 일어나?” 개새끼 소리를 듣자마자 기고만장했던 정승화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순순히 고분고분 수사관들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이 과장에서 공관을 지키는 해병대 병력과 수경사 소속의 헌병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여러 장교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태완의 술주정 정승화의 은혜로 출세한 장군들 중에는 육군 참모차장 윤성민 중장과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합세하여 전두환 장군을 정점으로 하는 육사출신 장교들을 증오하고, 심지어는 육사출신 장교들의 이름을 특정하면서 보는 즉시 사살하고, 광화문 일대에 포를 날려 쑥대밭을 만들라는 발포명령을 내렸습니다. 한 사람의 대대장 밑에 편제돼 있는 탱크 중대가 내편 네편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마주하면서 광화문 거리를 질주하였습니다. 아군끼리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서로 총질을 하는 사태가 동시다발로 여러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순전히 그날 초저녁부터 장군 진급 파티에 초대되어 술을 잔뜩 마신 뒤에 자행된 장태완의 술주정 때문이었습니다. 생쥐처럼 숨어 다닌 국방장관 노재현 이 모든 위험한 내전은 전두환 장군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행동한 최규하 때문이었습니다. 최규하, 과거의 전례나 사안의 긴급성과 내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려 11시간 동안이나 시간을 끌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국방장관 공관은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이웃해 있었습니다. 국방장관 노재현은 10.26밤 7:30분부터 이웃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난 총소리에 놀라 단국대 담을 넘어 여의도 부하장군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1공수 병력이 국방부에 진입할 때, 장태완의 술주정 명령에 의해 국방부 청사 옥상에 있던 수경사 소속의 발컨포가 진입하는 공수부대를 향해 불을 뿜었습니다. 이 총소리에 또 놀란 노재현 장관은 미8군 영내에 들어가 피신하면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최규하는 국방장관이 먼저 서명해야만 자기가 서명하겠다며 버텼습니다. 이런 마당에 국방장관이 이리저리 숨어다니기만 한 것입니다. 그동안 장태완의 술주정 명령이 자꾸만 내려갔습니다. 아군끼리 총질을 해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5명의 장군들이 최규하를 알현하였습니다. 특전사 사령관실에서 보좌관이 공수부대 장병에 의해 사실되는 등 상황이 촌음을 다툴 만큼 매우 위험하니 빨리 재가를 해 달라는 예의바른 읍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규하는 시종일관 국방장관이 먼저 서명해야만 자기가 서명할 수 있다고 버텼습니다. 국가관이 전혀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 국방부 청사 계단 밑에 숨어있던 국방장관의 몰골 최규하와 함께 총리공관에서 밤을 지새운 신현확 총리가 직접 국방부로 가서 구내방송을 하여 장관을 찾았습니다. 그래도 노재현은 꼭꼭 숨어있었습니다. 드디어 공수부대 요원들이 지하에서부터 옥상에 이르기까지 아래-위에서 동시에 청사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사 1층 먼지 쌓인 계단 밑에서 노재현이 부관과 함께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공수대원들이 놀라 “누구야~” 하고 플래시를 비추면서 총을 거누자 “나 장관이다” 하고 노재현이 나타났습니다. 병사들은 그런 장관에게 [충성] 구호를 외치고 경례를 한 후 장관실로 안내했습니다. 새벽 3:40분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곧장 총리 공관으로 안내되었고, 최규하는 노재현이 내민 결재서류에 서명을 하고 5:10분이라고 서명시각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꼬장꼬장하기로 이름난 이희성이 새로운 참모총장으로 임명됐고, 이희성은 즉시 계엄사령관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전에서 누가 이기나’ 지켜본 최규하와 노재현 이 순간 우리는 역사의 두 인물 노재현과 최규하를 다시 보게 됩니다. 노재현은 단지 무책임하고 비굴하기 때문에 숨어다녔을까요? 아군끼리 총질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수시로 받으면서도 한가하게 국방장관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며 세월아 네월아 무책임하게 시간을 끈 최규하는 단지 훗날 혼자서 책임을 뒤집어쓰는 일을 걱정하는 소인배이기 때문에 재가를 미루었을까요? 이 두 인간은 정승화 군벌과 전두환 군벌이 총질을 하면서 싸우는 내전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를 지켜보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 이 시각에 제가 내린 역사관입니다. 여기에 이후 소개될 5.17사건에서 최규하가 보인 행동을 더하면 최규하는 음흉하게 위장된 골수 빨갱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2008.에 제작한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상하권에 묘사돼 있고, 아울러 최근(2025)에 발행한 [옥중 다큐소설 전두환]에 스토리텔린식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2026.7.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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