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다시 보기
10/26사건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심복인 김재규가 경호처장 차지철과 대통령 각하를 시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삽교천 방조제 준공행사를 마치고 헬기로 돌아오면서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5시에 궁정동 안가에서 각하의 식사를 준비하시오” 이 전화를 받은 김재규는 권총을 준비하고 무서운 얼굴을 해가지고 비서 박흥주 육군대령과 박선호 해병대령을 불러 차지철과 각하를 시해한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차지철과 각하 살해에 김계원 합세 김재규는 또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을 빨리 좀 만나자 하여 1층 단채 건물 앞에 쪼그려 앉아 오늘 차지철을 제거하겠다고 하자, 김계원은 이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차지철을 살해하겠다는 말은 각하도 함께 시해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각하를 그냥 두고 차지철만 살해한다는 것은 각하에게 목을 내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해 과정에 김계원도 거들어 오후 7:40, 김재규는 차지철을 향해 권총을 쏘았고, 이어서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계신 각하를 쏘아 쓰러뜨렸습니다. 확인사살을 하려고 방아쇠를 당기자 권총이 고장이었습니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자 거기에는 김계원이 또 다른 권총을 가지고 있다가 김재규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박선호 대령이 미리 마루에 대기하고 있는 김계원에게 예비로 맡겨놓은 총이었습니다. 김재규와 정승화의 동행 김재규는 바로 옆 동 건물에 대기하고 있는 정승화 육군총장과 한 차를 타고 국방부 지하에 소재한 육군 B-2 벙커로 향했고, 그동안 김계원은 각하의 시신을 인접한 국군통합병원 분원에 옮겨놓고 군의관으로부터 “운명하였다”는 확인을 받은 후, 곧장 청와대 비서실로 갔습니다. 군의관은 초라한 노인이 시계도 허리띠도 너무 초라하고 헐어서 그 시신이 각하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최규하의 음흉한 행동 김계원은 청와대로 가서 긴급히 내각을 소집하였습니다. 장관들이 비서실에 와서 영문을 물어도 김계원은 함구했습니다. 오후 8:40분, 최규하가 도착했습니다. 김계원은 최규하에게 [김재규가 각하와 차지철을 시해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최규하는 이튿날 오전 4시,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까지 함구하였고, 그 이후에도 함구하였습니다. 김재규 편이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차지철로부터 당한 수모가 각하에 대한 불만으로 차곡차곡 쌓였던 것입니다. 밤 11시부터 비상내각회의가 국방부 회의실에서 열렸고, 장관들이 각하를 시해한 범인이 누구냐고 소리를 쳐도 최규하는 침묵한 채, 회의를 주재하였습니다. 육군 총장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을 합수부장으로 결정한 후, 이 사실을 국방장관실에 홀로 앉아있던 김재규에게 살금살금 가서 회의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정승화는 김재규가 키운 아바타 정승화가 참모총장이 된 것은 김재규의 덕분이었습니다. 김재규는 추석 선물로 정승화에게 당시 금원 300만 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강남 30여평 규모의 아파트가 200만 원 할 때였습니다. 충성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10.26밤, 정승화는 김재규의 부름을 받고 시해 시각에 시해 현장 바로 옆채에서 총소리를 듣고 있다가 일을 끝낸 김재규와 함께 국방부로 가서 김재규의 뜻대로 계엄병력을 배치하고, 수도경비사령부 병력으로 청와대를 포위하여, 경호원들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동결시켰습니다. 밤 11:40분, 김계원의 배신은 역사의 순간 김계원이 김재규의 편을 든 것은 김재규가 혁명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이미 다 해놓은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에 와보니 김재규에게는 아무런 준비가 없었습니다. 김재규를 배신하기로 마음먹은 김계원은 장관 보좌관실에 갔습니다. 장관실에는 김재규가 홀로 버티고 앉아있었습니다. 비상내각회의가 끝나갈 무렵, 장관 보좌관실에는 노재현 장관과 정승화 그리고 김계원이 함께 잠시 앉아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계원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권총을 탁자 위에 탁 소리 나게 올려놓았습니다. “각하를 시해한 범인은 김재규입니다. 이 총이 바로 김재규가 각하를 살해한 권총입니다” 완전 배신을 때린 것이었습니다.10.26 밤 11:40분, 각하 시해 4시간만의 배신이었습니다. 47세 육군소장 전두환의 등장 이 말을 들은 노재현 장관은 곧바로 정승화에게 [김재규를 즉시 체포하라] 명했습니다. 하지만 정승화는 자기 사무실에 와서 딴짓을 했습니다. 김진기 헌병감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불렀습니다. “헌병감은 김재규를 모셔다가 보안사령관에게 인계하고, 보안사령관은 김재규 부장을 보안사 안기에 정중히 모셔라” 낌새를 챈 전두환은 각하의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병원 군의관과 통화를 하는 등 여러 곳을 수소문했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챈 전두환 장군은 육본에 파견된 보안부대 오일랑 중령에 전화를 했습니다. “너 김재규 얼굴 알아?” “예, 압니다” “그럼 김재규는 네 얼굴 알아?” “모를 겁니다” “그럼 됐어. 너 지금 당장 헌병 복장하고 국방장관실에 있는 김재규를 체포해” 이 과정은 [수사시록으로 본 12.12와 5.18](상-하권)에 스릴 있게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007작전 저리 가라입니다. 체포당한 김재규는 묻기도 전에 그의 시해동기를 줄줄이 토해냈습니다. 정승화와 함께 진행하려던 혁명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소장은 47세, 촉이 매우 빠르고 용기가 충천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위인 기질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각하의 주변인물들은 왜 각하를 싫어했는가? 그러면 김재규는 왜 박 대통령을 시해할 생각을 했고, 주변의 여러 핵심인물들이 왜 김재규 편에 섰을가요? 차지철과 박근혜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차지철은 각하의 무조건적인 신임을 믿고 심지어는 국무총리까지도 무시하는 언동을 보였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이었습니다. 차지철을 한번이라도 스쳐간 사람들은 차지철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대통령은 저런 버릇없는 망나니를 왜 계속 감싸고 계시지?” 차지철에 대한 반감이 바로 각하에 대한 반감으로 전이됐습니다. 각하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은 박근혜가 최태민과 함께 [한마음운동] 등 공식행사들을 활발하게 드러내놓고 벌이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불순해 보인다는 여론이었습니다. 김재규가 총대를 메고 여러 차례 각하에게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건의하다가 대통령의 미움을 샀다고 합니다. “어미 없이 지내는 어린것한테 그게 할 소리냐”는 식의 화를 낼뿐, 정리하기를 미루었습니다. 나중에야 각하의 명을 받은 전두환 장군이 최태민을 강원도 동해안 부대에 격리시켰지만, 박근혜는 전두환 장군을 여러 찾아가 최태민과 함께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합니다. 차지철 문제와 박근혜 문제가 시너지를 발하여 각하의 주변 인물들이 각하를 싫어했을 것이라는 게 당시의 주변 여론이었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최규하와 김계원이었습니다. 이후의 행적을 보면 최규하는 위장한 빨갱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합니다. 이후 12.12사건 때와 5.17사건 때의 최규하는 완전 좌빨이었습니다. 2026.7.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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