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선생님
전교조 명단에서 발견한 내 학창 시절의 선생님 니체의 '초인'처럼 다가와 내 세계를 지배하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겠지만 나 또한 중학교 시절부터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바로 예전 전교조 명단 공개 당시 포함되어 논란이 되었던 선생님이다. 중학교 2학년 학기 초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처음부터 남달랐다. 아침 전교 조회시간에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올라 "수업시간에 만나요! 안녕~"이라고 인사해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낸 선생님은 그날 오후 도덕 시간에 우리 반에 처음으로 들어오셨다. 그런데 수업 첫 시간에 선생님은 먼저 책 머릿말을 펴라고 하시더니 '모든 책은 머릿말부터 읽어야 한다'고 하시며 한 학생을 일으켜 세워 머릿말을 읽게 하셨다. 그런데 머릿말의 내용 중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이 부분이 나오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그 부분을 줄을 그어 지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이라도 무조건 다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고 옳은 말인지, 아닌지 본인이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대목은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시의 가치를 그래프로 그려 평가하는 문학박사의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했던 존 키팅 선생님이 연상되지 않는가? 첫 수업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선생님은 칠판에 '아름다움과 폭력'이라고 크게 적으시더니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TV에서 우리에게 계속 강요되는 광고 같은 것들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파격이었던 첫 수업이었는데, 그 이후로 나는 책을 읽을 때 항상 머릿말부터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왠지 선생님이 멋있게 느껴져 선생님이 전공하셨다는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과제를 내줄 때면 선생님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그리고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등 어린 중학생에게는 난해한 책들의 독후감 숙제를 내시곤 했다. 내 인생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기가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그때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에 심취해 전혜린과 헤르만 헤세, 니체 등의 책을 모두 찾아 읽었고, 세상을 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의미를 묻는 사람이 되어 갔다. 졸업식날, 친구들은 졸업 앨범에 반 친구들 사인,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의 사인을 신나게 받으러 다녔다. 그런데 나는 오직 한 분, 그 선생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갔다. 3층 지도실에 마침 선생님은 혼자 계셨는데, 내 앨범을 살펴 보시더니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앨범에 다른 선생님들의 사인이 하나도 없자 "아무도 없네..." 하시고는 앨범 뒷장에 사인을 해주셨다. "知性美의 香氣 그윽한 女性이 되길. 죠나단의 친구임을 잊지 말아요." 선생님의 필체는 참 독특하고 멋졌다. 그리고 서랍에서 미리 써둔 편지를 꺼내 건네주셨는데, 네 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에는 나의 앞날을 위해 한 자리 꿈을 빈다는 말과 함께 문익환의 '꿈을 비는 마음'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선생님은 내가 찾아올 걸 어떻게 하시고 나를 위해 편지를 써두셨을까? 나는 남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소극적인 여학생이었고 더구나 좋아하는 선생님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할 정도로 수줍어서 다른 친구들처럼 선생님과 따로 만나 특별히 교류한 기억이 없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과 나와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일까? '지성미의 향기' 나는 오랫동안 그 문장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지성은 그렇다 쳐도,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는 지성미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그때 한동안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몇몇 친구들은 중학교 때 선생님들을 찾아갔지만 나는 그때 친구에게 핑계를 대고 못 갔는데, 아마 내가 아직 지성미의 향기가 나는 여성이 안 되었다는 생각에 선생님을 만날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른 뒤,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했을 때, 나는 내 불길한 예감이 맞지 않기를 바라면서 혹시나 하고 명단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찾아보았고, 결국 그 이름을 발견했다. 좌가 뭔지, 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절이었지만, 졸업식날 나에게 준 편지에 문익환의 시를 적어 주었을 때부터 선생님은 이미 좌파였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수업시간 중에 어렴풋이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 이런 논쟁적인 얘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만약, 지금 선생님을 다시 만나 선생님과 내가 토론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선생님과 나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느끼며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까? 세상을 좀 쉽게 살면 좋으련만, 매사에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는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인간이 된 것이 그 선생님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하면 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내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기신 분이다. 세상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사람. 어쩌면 그런 성향 역시 그 시절 선생님의 수업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니체의 '초인'처럼 내 학창 시절 나의 철학과 세계를 지배했던 선생님.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거부하고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치욕스런 전교조 명단에 있는 선생님이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은 봄이면 짙푸른 담쟁이 넝쿨이 드리우던 내 중학교 교정, 그리고 그보다 더 눈부시게 푸르렀던 내 학창 시절, 아직도 그 안에 있다. 지성미의 향기 그윽한 여성이 되기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문장 앞에서 자신이 없다. 👉 옴팡진TV 자율 후원 국민 781402-04-026796 이*주 #태극기집회 #우파집회 #보수집회 #자유우파 #애국보수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윤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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