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현상을 말하다 28. '한국적 민주주의'를 상기하라
건국 이후 가장 권위주의체제(독재)로 평가되는 유신체제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독재와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제기한 사례는 레닌에게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 4장에서 마르크스에 의해 국가론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부여받은 엥겔스가 무정부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조와 계급의 반격을 타파하기위해, 국가가 폐지될 때 까지 과도적 형태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고있다. 이러한 국가는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를 취한다. 그러나 동시에 엥겔스는 "실제로 국가는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위한 기구일 뿐이며, 더욱이 그점에서는 민주공화제도 군주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국가란 기껏해야 계급지배를 위한 투쟁에 승리한 프롤레타리아가 물려받게될 하나의 해악일 뿐, 프롤레타리아는 그 최악의 측면을 코뮌이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즉시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유로운 사회 상태속에서 새로이 성장하게된 세대가 국가라는 낡은 껍질을 벗어 내던지게될 때가 도래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엥겔스는 민주적 공화제, 곧 민주주의 역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기관으로 보고 있다. 이점에 대해 레닌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인정하는 국가, 곧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또는 주민의 일부가 다른 주민에 대해 체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국가성악설은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극적으로 바뀐다. 그는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국가를 국부를 창출하는 주체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헤겔(G.W.F. Hegel)이 말하는 "국가는 곧 도적의 구현체"란 이상주의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실지로 그가 지도자로서 18년의 행적은 2000년전 로마재건을 위해 12년 전장을 누빈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비견된다. 이것은 또한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 Attali)가 말한 비전, 카리스마, 국정운영능력으로 압축되는 국가지도자의 전범이기도 하다. 필자는 독재자를 선한(benign) 모델과 악한(malignant) 모델로 구분하고, 전자에 카이사르, 링컨, 리콴유, 박정희대통령을 들고, 후자에 진시황,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을 든다. 양자를 가르는 기준은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제공하는 자유의 존재 여부이다. 흔히 카이사르는 독재자의 전범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관용을 일생의 철학으로 삼았고, 진정한 귀족주의 정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 최고의 고전 [갈리아전쟁기]와 [반카토론(Anti-Cato)]를 쓴 저술가이기도 하다. 박정희대통령에게 동시대의 어려움과 함께 위대한 군인, 기업인, 과학자, 관료가 있었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이들로 기적의 팀 빌더가 된 것이다. 그가 조국근대화를 위해 조국산하와 세계를 누빈 것(18년)은 결코 카이사르의 대장정(12년)에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적 민주주의'는 도덕이 앞서는 사람이 이끄는 체제를 선호한 카이사르의 철학과 직결되는 것이다. 반면 진시황,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등은 자유와 진리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전제적 독재자인 것이다. 역사는 민주주의, 독재, 전제정이 교차하고 때로 민주주의와 독재, 공화정과 독재가 결합되기도 했다. 특히, 250년전 민주주의가 가장 앞섰다는 미국도 남부동맹이 결성되고 남북분립이 가시화되자 링컨은 전쟁을 선택하고, 독재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후일 그의 선택을 나라를 위해 악역을 마다않은 위대한 지도자의 선택으로 추앙하는 것이다. 2026.9.13 하봉규명예교수(부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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