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가망신(敗家亡身)." 집안이 무너지고 몸을 망친다는 이 섬뜩하고 원초적인 저주가, 뒷골목 조폭의 협박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치안 총수의 브리핑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잃어버린 참정권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경찰청장이 내뱉은 서늘한 경고장이다. "아무 생각 없이 불법 행위에 동조했다가 공범이 되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 상식의 저울을 꺼내 이 발언의 뼈대를 건조하게 달아보자. 국가의 무능과 헌법기관의 파행으로 투표용지가 증발했다.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주권자의 가장 신성한 기본권이, 대낮의 투표소에서 행정 마비라는 이름으로 강탈당한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헌정 유린 사태 앞에서, 정상적인 법치 국가라면 가장 먼저 수갑을 차고 패가망신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당연히 주권자의 표를 허공에 날려버린 선관위 수뇌부와, 이 거대한 직무유기를 방치한 행정부 권력이다. 이 도둑맞은 권리를 내놓으라며 아스팔트에 선 시민들을 '특수강요'와 '업무방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옭아매고, 기어이 가정을 파탄 내겠다며 공권력의 이름으로 겁박하고 나선 것이다. 헌법을 짓밟은 권력자들은 철갑을 두른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 그 무너진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국민에게 도리어 살기를 뿜어낸다. 이 신속하고 잔혹한 진압의 이면에는, 공권력이 지닌 지독한 ‘선택적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가 물류센터를 무단 점거하고 무려 25일간 국가 경제를 마비시켰던 사태를 복기해 보라. 폴리스라인을 부수고 경찰관을 향해 트럭이 돌진하는 명백한 폭동 앞에서 경찰은 어떠했던가. 25일 내내 꼬리를 말고 뒷걸음질 쳤고, 행정부는 밤샘 교섭을 주선하며 폭력을 휘두른 자들에게 합법적인 면죄부를 쥐여주며 설설 기었다. ‘진보’라는 붉은 완장을 찬 거대 이익 집단이 타인의 재산을 박살 낼 때는 25일간이나 자비롭던 공권력. 그러나 빽 없는 주권자들이 도둑맞은 헌법을 내놓으라며 광장에 서자, 단 며칠 만에 "패가망신"을 운운하며 이빨을 드러낸다. 경찰이 더 이상 법과 원칙을 수호하는 지팡이가 아니라, 이재명 정권과 좌파 카르텔의 심기를 호위하는 비루한 '사병(私兵)'으로 전락했음을 완벽하게 자백한 장면이다. 더욱 실소가 터지는 것은 저 '패가망신'이라는 단어의 얄팍한 기시감이다. "한국인을 건드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과거 이재명이 호기롭게 내질렀던 허세다. 하지만 자국 상선에 이란의 대함 미사일이 두 발이나 꽂혔을 때, 그는 패가망신은커녕 "고의성을 모르겠다"며 적국 앞에서 비굴하게 납작 엎드렸다. 밖에서는 미사일을 쳐맞고도 굽신거리는 텅 빈 권력이, 안방에 들어와서는 내 표를 돌려달라는 만만한 자국민들을 향해서만 핏대를 세운다. 적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자국민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전형적인 '방구석 여포'의 멘탈리티가 국가의 수뇌부 전체에 동기화되어 있는 것이다. 도둑을 잡으라는 경찰이 도둑의 문지기를 자처하며 피해자를 향해 곤봉을 휘두르는 나라. 표를 훔친 자들은 밀실에서 웃고, 권리를 뺏긴 자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수갑을 차는 이 숨 막히는 지옥도 속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목도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시민의 일상을 옥죄는 파시즘의 군홧발이, 이미 우리 턱밑까지 다가와 있음을. 박주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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