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와 노자가 경고한 ‘경멸’의 정치학> - 이재명의 취임1주년 기자회견을 보면서 -
권력의 정점에 다가설수록 지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눈앞의 반대파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자신이 과거에 뱉어놓은 말의 무게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포함하여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주는 언행은 정치인의 도덕적 일관성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되기 전 "대통령도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며 법 앞의 평등을 외쳤다. 당찬 일갈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사법 리스크가 옥죄어오자,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재판에 대한 '공소 취소'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권력을 잡기 전의 외침과 권력을 잡은 후의 변명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현상을 보며, 국민들은 환멸을 느낀다. 이러한 '말 바꾸기'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들, 적어도 최소한의 도덕적 인품과 상식을 지닌 지성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경멸(輕蔑)'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신념과 철학 대신 오직 '현재 눈앞의 이익과 권력 유지'만을 위한 말 바꾸기 행태로 가득 차 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공약의 파기다. 대선 후보 시절 그는 "불체포특권은 뇌물수수 같은 개인 비리를 보호하라고 만든 게 아니다", "내가 지은 죄가 없는데 왜 특권 뒤에 숨겠나"라며 당당하게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본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다가오자 "강도·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에서는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며 국회 표결 전날 사실상 부결을 요청하는 발언을 했다. 둘째, 당헌·당규의 고무줄 잣대와 명분 조작이다. 2020년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성비위 보궐선거 당시 그는 "당헌·당규에 중대한 잘못이 있으면 공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으면 지켜야 한다. 장사꾼도 신뢰가 먼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당 대표가 된 후에는 돈봉투 의혹과 사법리스크 등으로 보궐선거가 생기자 "당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며 슬그머니 공천을 강행했다. 셋째, 대장동 개발 책임에 대한 유체이탈이다. 의혹 초기에는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려 "대장동 개발 설계는 제가 한 겁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공환수 업적"이라고 말하더니, 천문학적 특혜와 배임 혐의로 측근들이 구속되자 "설계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었을 뿐, 구체적인 유착 관계는 실무자들이 한 일이라 전혀 몰랐다"며 부하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넷째, 외교적 반미·반일 노선의 이중성이다. 대선 후보 시절 주한미군을 향해 "점령군"이라 칭하고,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때는 '핵폐수'라고 지칭하고 단식 투쟁까지 하면서 지지층의 반미·반일 정서를 자극했다. 그러나 정작 외교 무대에서 미국 상공회의소 인사들을 만나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나라가 미국"이라 극찬했고, 주한일본대사 앞에서는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해 애정이 매우 깊다"고 발언하며 안팎이 다른 기만적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동서양의 고전은 입을 모아 지도자가 국민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 바로 파멸의 시작임을 경고해 왔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군주론》에서 군주가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규정했다. "군주를 파멸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은 국민의 재산에 손을 대거나, 국민을 기만하여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라고... 노자(老子) 역시 《도덕경》에서 군왕의 리더십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며 가장 최악의 군왕을 이렇게 정의했다. 가장 뛰어난 군왕은 백성들이 그 존재만 알고 있는 왕이고(太上 下知有之 : 태상 하지유지), 그 다음은 백성들이 친하게 여기고 칭찬하는 왕(其次 親以譽之 : 기차 친이예지)이며, 그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왕(其次 畏之 : 기차 외지)이며, 최악은 백성들이 경멸하고 무시하는 군왕(其次 侮之 : 기차 모지)이다. 현재 이 대통령의 위치는 어디인가. 상식적인 국민의 눈에 그는 이미 가장 최악의 단계인 ‘其次 侮之(모지)’, 즉 경멸받는 지도자의 길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맹목적인 팬덤이 보여주는 지지율 수치에 도취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지지율이라는 신기루는 결코 도덕적 파산을 가려주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팬덤의 결집이 견고해질수록, 그 외곽에 있는 합리적인 중도층과 지성인들의 경멸은 더욱 깊고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말라. 자신이 필요할 때는 법치를 외치고, 자신이 불리할 때는 법치를 부정하는 기만행위는 지성인들의 가슴 속에 거대한 모멸감과 경멸을 심어놓았다. 지지율의 달콤함에 취해 눈앞의 경멸을 보지 못한다면, 고전이 예언한 지도자의 가장 비참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보내는 냉소와 경멸의 징후를 무겁게 깨달아야 한다. #당진 #당진시 #경멸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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