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오래 살다 보니 이재명 정부, 그 중에도 특히 국방부를 통해 참으로 별에 별, 어찌보면 심오하고도 숭고한 철학적 개념을 너무 많이 배우게 된다. 세상에는 사람의 발목을 날려버릴 목적으로 묻는 '나쁜 지뢰'가 있는 반면, 아무런 악의 없이 그저 땅속에 조용히 머물고 싶었던 '순수한 지뢰'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지뢰 사고를 지난 일주일 내내 북한 눈치를 보며 달팽이처럼 기어 다니던 군 당국이, 마지못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며 덧붙인 해설은 가히 암살자(들)에 이은 최고의 예술적 대본이라 할 만하다. 사고가 난 수색로는 50여 년간 사용하지 않던 길이었으니, 북한이 우리 군을 노리고 지뢰를 심은 '고의성'은 현시점에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눈물겹고도 자비로운 안보관인가. 무장한 적군이 한밤중에 군사분계선을 몰래 넘어와 살상 무기를 파묻고 갔지만, 우리가 평소에 발길을 뜸하게 하던 후미진 곳이었으니 우리를 해칠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는 이 찬란한 역지사지. 피를 흘린 것은 아군인데, 정작 핏대를 세우며 적군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는 우리 군 수뇌부의 그 위대한 인류애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군사분계선 이남은 50년을 안 갔든 100년을 안 갔든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다. 그런데 적군이 거기에 우리가 올 줄 몰랐을 것이라며 고의성을 지워주는 순간, 우리 군 스스로 그 땅이 북한 병력들이 마음대로 산책을 나와 지뢰를 심고 가도 되는 '북한의 앞마당'임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 된다. 조국의 영토를 방위해야 할 국방부가, 적의 도발을 무마해 주기 위해 아예 우리 영토의 통제권마저 사이좋게 양보해 버리는 눈부신 국토 헌납의 현장이다. 아군의 발목이 날아가 피가 튀는 참상 앞에서도 대북송금에 코아 꿰인 이재명 의 유화적인 대북 기조에 흠집이 갈까 두려워, 50년 전 수색로 역사까지 뒤적이며 적군의 무죄를 입증할 논리를 짜내는 저 지극한 정성. 그 와중에 다친 대대장이 보호 덧신을 신었느니 벗었느니 초기 발표마저 번복하며 우리 장병에게 슬그머니 책임을 전가하려는 그 꼼꼼함까지. 적군이 묻은 지뢰를 '고의성 없는 과실'로 다정하게 포장해 주는 국방부가 지휘봉을 쥐고 있는 한, 앞으로 대한민국 안보는 몹시 평화로울 것이다. 조만간 북한 전투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녀도 "단순한 항로 이탈일 뿐 공격의 고의는 없었다"며 쉴드를 쳐주고, 적의 미사일이 떨어져도 "바람에 밀려온 불발탄"이라며 우아하게 미소 지을 테니 말이다. 적의 만행 앞에서도 결코 분노하지 않는 이 경이로운 국선 변호인들의 별 달린 군복이, 참으로 눈부시게 무겁고 처량해 보인다.

군은 우리의 아들딸들이다 그들은 우리을 지키고 우리는 군을 지킬때 평화가 오는거다 국민은 많은데 주인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