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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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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진실 알리기 전도사 지만원 박사의 글들을 공유합니다.www.systemclub.co.kr

관리자•12일 전

5.18 행불자 분석.

5.18 행불자 분석 광주의 집단적 사기 행위 5.18조사위원회는 등록된 전체 광주인 행불자 84명 중 73명만 최종 행불자로 확정했다. 84명 중에는 버젓이 살아있으면서도 1억-1.5억원을 타 먹은 사람이 3명이나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데 5.18조사위와 광주시는 이들이 사기로 받아먹은 보상금을 환원시키지 않고 뭉개고 있다 한다. 이 내용은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020600051 실종의 의미 행불자 73명은 광주인 전체 사망자 154명 중 47.4%, 거의 절반의 숫자다. 이들은 5.18 폭동단계에서 실종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사망했지만,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광주 땅에서 사망했으면 시체가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시체가 없는 현상은 귀신 곡하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광주사람들은 공수부대가 이들을 집단으로 암매장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계엄군이 암매장했다면 누군가가 벌써 제보를 했을 것이다. 73명 실종자는 북괴가 처분했을 것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북한군이다. 만일 북한군이 73명을 실종시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증거를 인멸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떤 증거를 인멸시키기 위해서일까? 아래에 논리적 추론을 시도해 본다. 가정#1. 1980년 5월 20일 오후, 훈련된 300명의 괴한들이 광주 톨게이트 부근의 ‘군분교’(작은 하천 교량 명) 주위에 대규모 가두리장을 설치했다. 5.21. 08시에 이 지점을 통과하는 20사단을 습격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물자들을 날라다 거대한 장애물을 설치하는 데 광주의 수 많은 중장비들이 동원됐다. 이 가두리장을 설치하는 데 동원된 중장비 조종자들과 작업 인부들 수십 명이 있었을 것이다. 이 괴한집단 300명이 북괴군이라면 그들은 비밀을 감추기 위해 가두리장 설치에 동원됐던 광주인들을 어디론가 데려다 즉결처리했을 것이다. 가정 #2: 군사적 판단으로는 5월 21일 밤, 북괴군 600명 중 100명 정도는 도청에 차려진 북괴군 지휘부를 방어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500명 정도를 교도소 공격에 투입했을 것이다. 당시 북괴는 광주교도소에 수용된 2,700여 명의 수용자들을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김일성의 어명을 긴급 방송했다. 그 중 475명이 사살됐을 것이다. 이 북괴군 시체가 발각되면 김일성은 유엔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들 시체를 밤중에 도청으로 옮기려면 수십 명의 부역자가 동원됐을 것이다. 이들 부역자들은 반드시 흔적 없이 실종시켜야만 했다. 가정 #3. 475구 중 도청에 옮겨놓았던 430구의 유골을 청주 흥덕지구로 옮겼을 것이다. 이 때에도 수많은 노무자들이 동원되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분되었을 것이다. 가정 #4. 북한은 475명의 북한군 전사들이 광주에서 죽어 도청 공간에 쌓여있다고 3개 문헌과 5.18기록영화에서 밝혔다. 권영해는 490명이 6.19에 사망한 것으로 북한 문서에 기록돼 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15명은 중상 상태로 북에 갔고, 6월 19일까지 15명 모두가 죽었다는 뜻일 것이다. 중환자 15명을 목포까지 가는 동안 치료하고, 배가 북으로 운행하는 동안 그리고 북에 가서도 치료를 해야 했을 의사와 간호원을 데려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2026.3.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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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8일 전

이제 자신있게 말한다.광주법원은 시궁창!

애국대통령과 반역의 괴수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은 맨땅에 헤딩해서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어엿한 나라로 부흥시켰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은 [민주화]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개돼지 국민을 선동해서 북한에 충성하고 국부를 도둑질해서 북에 바쳤다. 이 모든 사기가 5.18민주화라는 미중유의 거대한 사기극에서 비롯했다. 전라도의 세계적 사기의 근원은 5.18 5.18이 왜 민주화 사기인지, 나는 요 며칠 사이에 확실하게 찾아냈다. 광주의 새파란 판사놈들이 전두환 대통령을 광주에까지 강제로 데려다 사기-협작식 재판을 했다.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공작이 확실시 되는 데도 광주판사라는 잡놈들이 ‘거룩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사기를 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5.18은 북한의 대남공작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광주법관들의 근거 5.18에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광주의 주장은 오로지 하나, 1997년 전두환 재판이다. 전두환이 내란죄로 처벌됐다는 사실과 북한이 광주폭동을 주도하지 않았다는 명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5.18을 북이 주도했다는 빼박증거 1.김인태, 김중식 등 광주사람 4명을 도청으로 끌고 가서 살해한 무장괴한 숫자가 [34+알파]명이다. 이 숫자는 현장사진에 나타나 있고, 4명을 인민재판하여 즉결처분시켰다는 사실은 미CIA보고서 및 머스키 국무장관이 확인했고, 이들 4명이 사망한 사실은 노담 말고도 독립적인 보도매체 [뉴스와논단]이 밝혀냈다. 광주판사들은 [34+알파] 명이 광주인인지 북한인인지 확실하게 답해야 할 외통수에 몰려있다. [34+알파]명이 북한사람이면 5.18은 세계인 모두를 우롱한 천하의 사기-협잡 행위로 낙착되는 것이며, 따라서 전라도 인간들은 다 개 같은 종자들로 돌팔매를 맞아야 한다. 2. [34+알파] 명이 광주사람이면 5.18은 더 이상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아울러 [34+알파]명은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 있는가? 기록을 내놓지 못하니까 광주판사놈들은 천하의 개 같은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북한개입] 표현만으로 타지역 국민을 학대하는 행위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3. 광주를 주름잡던 게릴라부대에는 지휘자가 있고, 훈련되었으며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투프로들이며, 20매의 현장 사진에 나타난 용병급 전투프로의 숫자만 해도 200여명이다. 미CIA는 이 군사프로 집단을 ‘북의 조종을 받는 극극단주의자들’로 호칭했고, 그 수가 550여 명이라 평가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광주에서 전사당한 북한군 수가 490명이라 발표했다. 북한의 대남공작 문헌 2개와 남한 당국의 문헌 그리고 군상황일지에는 600명으로 기재돼 있다. 황장엽은 망명 직전까지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비서였고, 그는 5.18을 북이 저질러놓고 덤터기를 남한에 뒤집어씌운 사건으로 5.18이 종료된 이후 대남부서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1980년에 북한이 제작한 5.18기록영화에는 475명이 떼죽음 당해 도청에 집결돼 있다고 했고,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2권에도, [찢어진 깃폭]에도 475구가 떼죽음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490-475=15명, 이 15명은 광주에서 중상일 입은 상태로 북으로 철수한 후 북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4.광주판사놈들은 49세의 해남농군 김인태를 도청으로 끌고 간 괴한이 박남선과 지용이라 판결했다. 광주판사놈들이 박남선과 지용을 광주시민을 살해한 자로 판결한 것이다. 그런데 박남선과 지용은 지금도 5.18민주화 인사라며 떵떵거린다. 광주사람이 광주사람을 죽였다고 판단해놓고, 어찌 광주판사놈들은 왜 살인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잡놈-사기꾼 수준의 판사놈들을 어찌 민주화의 성지를 지키는 광주판사라 할 수 있는가? 5. 80대 노파 심복례와 90대 노파 김진순을 가지고 민주화 장난을 친 광주판사놈들, 1980.5.30. 남편 김인태의 관을 망월동에서 처음 보았다는 기록이 넘치는데도 5.23. 도청에서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심복례라고 판단한 광주판사! 아들 이용충이 죽은 사실을 6.30.에 경찰로부터 통보받은 90대 노파 김진순을 5.23에 관 앞에서 눈물 훔치는 여인이라고 판단해준 광주판사놈들! 결 론 지옥이나 분만할 수 있는 악귀들이 이런 광주법원 판사놈들이다. 2026.3.2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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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9일 전

5.18이 천하의 사기극이라는 증거.

광수 등 5.18관련 재판의 플랫홈: 5.18 ‘북한군 개입’ 북한군이 개입했으면 현장의 얼굴이 북한얼굴이라야 한다. 북한이 오지 않았다는 광주 주장의 근거: 2025고단4493, 특별법 위반 공소장 1) 1997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돼 있다. 2) 북한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 북한이 와서 5.18을 주도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의 근거 1) 광주고등법원 제1민사부 2025.10.30. 판결(사건2024나22299) 13쪽 ‘북한군 10명 정도 개입 가능성은 있지만 수백 명은 아니다’ 2) 지휘체제를 갖춘 국제 용병급 군사프로들의 지휘장면이 담긴 수십 매의 사진 속 수백 명은 광주인 아니다. 김양래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까지도 법정에서 [전두환이 투입시킨 게릴라부대]라고 답변, ⓵ 광주인 아니다 ⓶ 외지에서 온 게릴라부대라는 뜻. 3) [5.18항쟁 증언자료집] 광주인들은 5.23까지 도망다녔다. 5.23일 도청은 외지인이 통제하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항쟁본부는 5.26. 새벽에야 구성됐다. 군용차량 수백대를 탈취한 것도 무기고를 턴 것도 광주인과는 무관한 행동이었다. 4) 미 국무부장관 머스키가 확인해준 미CIA 보고서 내용:“극렬분자 550명이 광주사태를 주도했다. 이들은 광주시민들을 체포해다가 인민재판을 열었고, 이미 여러 명이 즉결처분당했다.” 5) [34+알파] 명이 광주인인가의 여부가 5.18성격 규명의 핵심고리. 도청으로 연행돼가는 4명의 광주 피해자들이 사망한 사실을 제1차로 노숙자담요가 추적했고, 제2차로 [뉴스와논단]이 추적 확인했다. 연행을 주도한 무장괴한이 34명이다. 인민재판을 한 자가 알파 명 더 있을 것이고, 즉결처분을 담당한 자가 알파명, 지휘부 요원이 알파명 더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가 광주인들인가에 따라, 5.18에 개입한 존재가 광주고법 판결대로 [10명] 정도에 불과한 것인가가 판가름될 것이다. 6) 이전 법관들의 법왜곡 행위: 이전의 법관들은 해남군민 김인태를 도청으로 잡아가는 34명의 반탐조 캡틴(프락치 검색조)인 제71광수를 박남선이라 판결했고, 반탐조원 73광수를 광주인 ‘지용’이라고 판결했다. 판결대로라면 박남선과 지용은 함평경찰 4명을 차량으로 깔아죽인 배용주처럼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 없다. 5.18재판은 난잡한 범법 행위였다. 7) 김경재 Vs. 미국-남한-북한 정보 수장의 무게 비교: 광주고법은 미CIA자료, 남한 정보수장이었던 권영해의 구체적 증언, 대남정부 총책이었던 황장엽의 증언 모두를 구체성이 결여돼 있는 반면 김경재가 북한 간부의 초대에 의해 인민군 열사 묘지를 슬쩍 일견한 과정에서 [광주 어쩌고 쓰인 묘비가 10개 정도 되더라]고 한 표현 하나만 구체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묘비에 ‘광주’라고 쓰는 행위는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북한당국이 취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⓵ 미CIA는 북과 연계된 극렬주의자를 550여 명이라 발표했고, 광주인을 연행해다가 인민재판을 열어 ‘벌써’ 여러 명을 처단했다고 밝혔는데, 그 CIA정보가 사실인 것으로 노숙자담요와 [뉴스와논단]이 추적하였다. 그러면 CIA 보고서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⓶ 전 안기부 부장 권영해가 밝힌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5.18은 북이 통일의 마중물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490명이 광주에서 사망했다. 그 명단이 시중에 활자화되어 유통되고 있다. 군용차량을 탈취하여 수십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턴 행위는 북한군이 했다” ⓷ 1982년 북한 노동당 출판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과 1985년에 발행한 [광주의 분노]에는 600명 숫자가 기재돼 있고, 1985. 안기부 상황일지와 1995. 검찰보고서 그리고 군 상횡일지에 다 같이 600명이라는 숫자가 정확히 기록돼 있다. ⓸ 북한이 1980에 개봉한 광주사태 기록영화, 북한이 발행한 위의 두 대남공작서, 일본 천주교정의평화협의화가 1980.6.6.에 일본에서 발표한 [찢어진 깃폭]에 다 같이 도청에 475구의 억울하게 죽은 시체가 있다고 표현했다. 북한판 미아리고개 [무등산의 진달래] 노랫말에는 “동강난 조국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라는 표현이 있다. 무리죽음은 떼죽음이다. ⓹ 황장엽과 김덕홍은 “5.18은 북의 공명주의자들이 사주해놓고 그 책임을 남한에 뒤집어씌운 사건이며, 사태가 끝난 후 대남사업부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고 증언. 소결: 위 ⓵~⓹ 에 이르는 내용은 구체성에 있어서 김경재의 증언과 광주고법의 판단을 압도적으로 제압할만큼 북한군 규모가 550-600명이었다는 점을 지향하고 있다. 정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출처에 대한 신뢰성이다. 미CIA, 미국무장관, 권영해 전 K-CIA부장. 황장엽 전 대남비서 총책은 다 같이 국가단위 최고의 정보수장들이기 때문에 정보 등급 상 A급 정보로 분류된다. 하지만 김경재는 정보맨이 아닌 일반 정치인임으로 그는 출처 등급에서 잘해야 D급 정도일 것이다. 광주고법은 이런 D급 정보를 인용하고, A급 정보 여러 개를 무시했다. 이는 법왜곡죄에 해당할 것이다. 8) 북한군인 600명 이외에 또 다른 북-민간집단 900여 명이 도청 지역을 배타적으로 점령한 사실의 의미: 당시 광주인들은 모두 숨어 다니거나 집에서 두문불출하였다는 것이 5.18 최상위 유공자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광주시장은 사태 초기에 헬기를 타고 도망갔고, 경찰과 공무원들은 신분을 속이고 도청을 탈출했다. 그런데 현장 사진들에는 도청을 배타적으로 점령하고, 일사불란한 통제하에 시체행사를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들을 누가 도청으로 불러냈고, 누가 이들을 지휘통재 했는가? 피고인은 당시 지휘권도 없었던 합참의장과 해군총장이 불법하게 광주작전에 긴급 개입해 전남해안 방어부대를 전북 변산반도 이북으로 이동시켜 전남 해안을 비워주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워진 목포항으로 북한의 대규모 민간 집단이 여객선을 타고 유유히 입항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미CIA 보고서 내용이 있다. “대규모 민간인들이 목포에서 광주로 이동하여 시위에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광주사람들은 서슬 퍼렇던 계엄군의 감시가 무서워 유가족들만 5.29-30.에 망월동 야산에 뿔뿔이 가서 시체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900여명으로 보이는 이들 민간인들은 상황상 광주시민일 수 없다는 것이 연구결과다. 결 론 1.이상의 팩트와 논리들이 해명되지 못하는 한, 5.18은 천하의 대 사기극이다. 2. 특별히 범의가 없는 상황에서 학자의 연구 내용을 비-학자가 국가권력으로 수정하고 단죄하는 것은 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다. 2026.3.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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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7일 전

5.18 목줄.단단히 물었다!

5.18이 사기극인 것, 철저히 증명됐다. 콘텐츠는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것을 남은 3개의 재판에 어떻게 전투적으로 투영시키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내가 요사이 홈페이지에 발표한 물증들을 판사들이 부정하면 그들은 법왜곡죄에 걸려들 것이다. 법 왜곡죄가 생기고부터 나는 판사들이 지난 시절처럼 함부로 마구잡이 판결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내가 준비한 콘텐츠를 가지고 재판에서 진다면 세상의 모든 논리가 다 무너져야 한다. 나는 전라도의 귀축 같은 협잡질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다행히 아직도 3개의 재판이 남아있기 때문에 3개의 전투장에서 전라도 악귀들을 때려눕힐 수 있게 됐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는 권투선수가 됐지만 아직은 링 위에 서 있다. 그리고 하늘의 영감으로 마지막 승리를 선언 받을 수 있는 KO 펀치를 날릴 준비가 되어있다. 최종의 라운드에서 이기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반드시 5.18의 더러운 껍질을 벗겨버리고 사기-협잡질로 뜯어먹고 사는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 성 전라도에 유황불을 지를 것이다.. 2026.4.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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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1일 전

A급 정보와 D급 정보를 구분조차 못하는 광주판사들.

북한이 오지 않았다는 광주 주장의 근거: 2025고단4493, 특별법 위반 공소장 1997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북한이 개입한 사실 없다. 북한이 와서 5.18을 주도했다는 피고 측 주장의 근거 1) 광주고등법원 제1민사부 2025.10.30. 판결(사건2024나22299) 13쪽 ‘북한군 10명 정도 개입 가능성은 있지만 수백 명은 아니다’ 2) 지휘체제를 갖춘 국제 용병급 군사프로들의 지휘장면이 담긴 수십 매의 사진 속 수백 명은 광주인 아니다. 김양래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까지도 법정에서 [전두환이 투입시킨 게릴라부대]라고 답변했다. ⓵ 광주인 아니다 ⓶ 외지에서 온 게릴라부대라는 뜻이다. 3) [5.18항쟁 증언자료집], 광주인들은 5.23까지 도망다녔다. 5.18 최상위 유공자들은 이 증언집에서 한결같이 증언했다. 5.23일 도청은 외지인이 통제하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항쟁본부는 5.26. 새벽에야 구성됐다. 군용차량 수백대를 탈취한 것도 무기고를 턴 것도 광주인과는 무관한 행동이었다. 4) 미 국무부장관 머스키가 확인해준 미CIA 보고서 내용“: 극렬분자 550명이 광주사태를 주도했다. 이들은 광주시민들을 체포해다가 인민재판을 열었고, 이미 여러 명이 즉결처분당했다.” 5) [34+3알파] 명이 광주인인가의 여부가 5.18성격 규명의 핵심고리. 도청으로 연행돼가는 4명의 광주 피해자들이 사망한 사실을 제1차로 노숙자담요가 추적했고, 제2차로 [뉴스와논단]이 추적 확인했다. 연행을 주도한 무장괴한이 34명이다. 인민재판을 한 자가 알파 명 더 있을 것이고, 즉결처분을 담당한 자가 알파명, 지휘부 요원이 알파명 더 있을 것이다. 이들 34+3알파의 어깨들 모두가 광주인들인가에 따라, 5.18에 개입한 존재가 광주고법 판결대로 [10명] 정도에 불과한 것인가가 판가름될 것이다. 6) 이전 법관들의 법왜곡 행위: 이전의 법관들은 해남군민 김인태를 도청으로 잡아가는 34명의 반탐조 캡틴(프락치 검색조)인 제71광수를 박남선이라 판결했고, 또 다른 반탐조원 제73광수를 광주인 ‘지용’이라고 판결했다. 판결대로라면 박남선과 지용은 함평경찰 4명을 차량으로 깔아죽인 배용주처럼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 없다. 5.18재판은 난잡한 범법 행위였다. 7) 김경재 Vs. 미국-남한-북한 정보 수장의 무게 비교: 광주고법은 미CIA자료, 남한 정보수장이었던 권영해의 구체적 증언, 대남정부 총책이었던 황장엽의 증언 모두를 구체성이 결여돼 있는 반면 김경재가 북한 간부의 초대에 의해 인민군 열사 묘지를 슬쩍 일견한 과정에서 [광주 어쩌고 쓰인 묘비가 10개 정도 되더라]고 한 표현 하나만 구체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도비닉을 생명으로 여기는 북한이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묘비에 ‘광주’라고 쓰는 행위는 도저히 취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보기가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는 김경재가 묘비에 쓰인 작을 글씨 [광주]를 10개씩이나 보았다는 것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김경재는 정보맨이 아니라 전라도 출신 정치인이다. 정보출처 등급상 D급인 것이다. 반면 A급으로 분류되는 정보원(source)을 보자. 1. 미CIA는 북과 연계된 극렬주의자를 550여 명이라 발표했고, 광주인을 연행해다가 인민재판을 열어 ‘벌써’ 여러 명을 처단했다고 밝혔는데, 그 CIA정보가 사실인 것으로 노숙자담요와 [뉴스와논단]이 추적하였다. 그러면 CIA 보고서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2. 전 안기부 부장 권영해가 밝힌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5.18은 북이 통일의 마중물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490명이 광주에서 사망했다. 그 명단이 시중에 활자화되어 유통되고 있다. 군용차량을 탈취하여 수십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턴 행위는 북한군이 했다” 3. 1982년 북한 노동당 출판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과 1985년에 발행한 [광주의 분노]에는 600명 숫자가 기재돼 있고, 1985. 안기부 상황일지와 1995. 검찰보고서 그리고 군 상횡일지에 다 같이 600명이라는 숫자가 정확히 기록돼 있다. 이 모두가 정보원 분류상 A급이다. 4. 북한이 1980에 개봉한 광주사태 기록영화, 북한이 발행한 위의 두 대남공작서, 일본 천주교정의평화협의화가 1980.6.6.에 일본에서 발표한 [찢어진 깃폭]에 다 같이 도청에 475구의 억울하게 죽은 시체가 있다고 표현했다. 북한 전문가 이명영교수 역시 그의 저서 [통일의 조건]에서 [찢어진 깃폭]에 기재된 475명의 도청 시체에 대해 언급했고, 니시오카 쓰도무도 그의 책에서 475명을 다루었다. 북한판 미아리고개 [무등산의 진달래] 노랫말에는 “동강난 조국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라는 표현이 있다. 무리죽음은 떼죽음이다. 5. 황장엽과 김덕홍은 “5.18은 북의 공명주의자들이 사주해놓고 그 책임을 남한에 뒤집어씌운 사건이며, 사태가 끝난 후 대남사업부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북한이 주도해놓고 남한에 덤터기를 씌운 행위, 그리고 북한의 대남사업부(3호청사)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은 북한 김일성이 직접 지휘했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소결: 위 1~5 에 이르는 내용은 구체성에 있어서 김경재의 증언 및 광주고법의 판단을 압도적으로 제압한다. 북한군 규모가 550-600명이었다는 점을 지향하고 있다. 정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출처에 대한 신뢰성이다. 미CIA, 미국무장관, 권영해 전 K-CIA부장. 황장엽 전 대남비서 총책은 다 같이 국가단위 최고의 정보수장들이기 때문에 정보 등급 상 A급 정보로 분류된다. 하지만 김경재는 정보맨이 아닌 일반 정치인임으로 그는 출처 등급에서 잘해야 D급 정도일 것이다. 광주고법은 이런 D급 정보를 인용하고, A급 정보 여러 개를 무시했다. 이는 법왜곡죄에 해당할 것이다. 8) 북한군인 600명 이외에 또 다른 북-민간집단 900여 명이 도청 지역을 배타적으로 점령한 사실의 의미: 당시 광주인들은 모두 숨어 다니거나 집에서 두문불출하였다는 것이 5.18 최상위 유공자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광주시장은 사태 초기에 헬기를 타고 도망갔고, 경찰과 공무원들은 신분을 속이고 도청을 탈출했고 통신 시스템도 마비돼 있었다. 그런데 현장 사진들에는 도청을 배타적으로 점령하고, 일사불란한 통제하에 시체행사를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들을 누가 도청으로 불러냈고, 누가 이들을 지휘통재 했는가? 피고는 당시 지휘권도 없었던 합참의장과 해군총장이 불법하게 광주작전에 긴급 개입해 전남해안 방어부대를 전북 변산반도 이북으로 이동시켜 전남 해안을 비워주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워진 목포항으로 북한의 대규모 민간 집단이 여객선을 타고 유유히 입항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미CIA 보고서 내용이 있다. “대규모 민간인들이 목포에서 광주로 이동하여 시위에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광주사람들은 서슬 퍼렇던 계엄군의 감시가 무서워 유가족들만 5.29-30.에 망월동 야산에 뿔뿔이 가서 시체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900여명으로 보이는 이들 민간인들은 상황상 광주시민일 수 없다는 것이 연구결과다. 2026.4.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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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7일 전

5.18 진실은 활자와 현장사진에 있다!

5.18 진실은 활자와 현장사진에 있다! 1. 활자에 담긴 진실 1) 군 상황일지 요약 “300명의 시위대가, 5월 21일 오전 08시에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하고, 하루 전날에 [군분교]라는 작은 교량을 중심으로 하는 매복지점에 중장비들을 동원하여 가두리장을 설치한 다음 5.21.08시에 계획대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20사단 차량부대를 습격하여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한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인근에 있는 군용차량 제조사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향했고,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5대의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접근하여, 총 600명이 공장을 점령한 후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400대를 탈취하자마자 마치 예행연습을 한 사람들처럼 곧장 전남 17개 군에 위장돼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3정의 총기와 8톤 분량의 TNT를 탈취해가지고 전남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그날 밤부터 광주교도소를 5차례 야간공격했다.” 2) 미 CIA보고서 ⓵ 시위를 주도한 극렬분자들의 수는 550여 명, 50여 명이 지휘부이고 500여 명이 실행자들이었다. 이들은 북과 연계돼 있다. ⓶ 이들은 광주시민들을 체포해 인민재판을 열고 즉결처분을 단행했다. 벌써 여러 명 처형됐다. ⓷ 목포에서 민간인 그룹이 대거 광주로 이동하여 시위에 동참했다(사진상의 판독 결과 900여 명의 북한 남녀노소 어린이로 구성된 그룹이 광주시민 가장한 장례 행사에 총동원). 3)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서 3권, 북한이 제작한 5.18 기록영화에 활자화된 북한군 사망자 475명.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서 3권에 475명의 시체가도청에 쌓였다며 분노의 표현을 했다. 광주시민 사망자는 모두 154명뿐이며, 이들은 도청 옆 건물인 상무관에 따로 집결돼 있었다. 권영해는 이후에 안기부 조사를 통해 북한군 490명이 광주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475명은 광주에서 죽고 15명은 중상상태에서 북으로 철수한 이후 6월 19일까지 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475명 중 430구가 청주유골인 것으로 추정돼 있다. 4)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서 2권, 한국군 상황일지, 남한의 검찰보고서(1995)에 활자화된 극렬분자 수 600명으로 기재돼 있다. 5) 5.26 새벽에야 구성된 [항쟁사령부] 지휘부 요원들이 곧 5.18 최상위 유공자들이다. 이들이 2002년 12월에 증언한 내용들이 [5.18항쟁 증언자료집]에 수록돼 있다. “광주인들은 광주 시위를 주도하지 않았다.” 광주인들은 5.18 직전부터 5.24. 오전까지 각자 도망다녔으며, 5.23.에 도청에 들어가려다 카리스마 넘치는 고관들의 제지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5.21일의 대규모 군사작전과 900여 민간인들이 동원된 5월 23일의 대규모 장례행사는 광주인들이 벌인 것이 아니라 했다. 5.18기념재단 전 상임이사 김양래는 무장한 군사행위를 보여주는 군사 프로들이 광주인들이 아니었고, 외지에서 온 게릴라부대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2. 현장사진에 담긴 진실 1) 무전기까지 동원한 지휘체계가 획립돼있는, 국제 용병급 수준으로 훈련된 무장괴한들의 수가 수백 명 담긴 수십 장의 현장 시진 5.18기념재단 전 상임이사 김양래까지도 법정에서 “전두환이 투입시킨 게릴라부대로 보인다“고 답함으로써 그 무장한 수백 명이 광주인이 아니고 고도로 훈련된 게릴라부대로 보인다고 대답. 이 무장 부대들이 광주인으로 보인다는 주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2) 5.23. 900여명의 민간인 집단이 일사불란한 통제하에 벌인 장례행사 사진 19매 5.21. 오후 5시, 계엄군은 결사적으로 지키던 도청을 무장괴한들에 내주고 시외곽으로 도주했다. 5.23.에는 광주시장도 도망가고 모든 공무원과 경찰이 도망가고 통신 체계도 전면 마비되고, 모든 시민들이 대문 닫고 숨어있던 날이었다. 광주에는 대한민국이 없었다. 이런 날 도청 지역을 배타적으로 점령하여 관들을 날라 진열해놓고, 대성통곡을 하는 등 장례행사를 치르고, 사망자 명단을 민간집단에 보여주는 시나리오에 따라 쵤영한 단체사진이 있다. 당시 광주의 촬영주권은 오로지 시위자 측에만 있었다. 어쩌다 멋모르고 북한 민간 집단 속에 들어갔던 광주인들이 프락치로 지목되어 도청으로 끌려가 즉결처분당했고, 이렇게 즉결처분된 광주시민이 4명 있었다. 이 사실은 미 CIA와 노숙자담요 그리고 매체 [뉴스와논단]에 의해 중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900여 명은 당시 함참의장과 해군참모총장의 불법적 월권행위에 의해 비워진 목포항 해역으로 유유히 접안한 대형 여객선에 의해 상륙했을 것이고, 이들이 광주로 올라와 시위에 참여한 사실은 미 CIA에 의해 확인되었다. 6.25 직전 군작전을 간첩이 지휘했듯이 5.18 직전에도 합참의장과 해군총장이 세작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유병현 회고록 453쪽). 3) 무장 괴한 34명이 김인태, 김중식 등 광주인 4명을 도청으로 연행해가는 사진 5매. 미 CIA 보고서 내용 그대로 극렬분자 34명이 광주사람 4명을 도청으로 잡아가는 사진이 5매 있다. 이중 2매는 해남군민 김인태를 잡아가는 도청 정문 밖 사진과 도청 안 사진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34명이 광주시민이라면 이들은 벌써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기록은 없다. 이들 34명이 광주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5.18은 북한이 주도한 것이 된다. 이 증거는 그야말로 빼박증거로, 이제까지 눈을 부라려오던 광주를 막다른 외통수 코너에 몰아넣는 진검이다. 3. A급 정보원(source of information)들의 증언: 550-600명 3개의 A급 정보원의 증언이 100% 일치한다. 미 CIA 보고서는 북과 연계된 극렬집단 규모가 550여 명이라고 했다. 당시 미 국무장관 머스키가 CIA보고서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는 발표를 했다. 대한민국 최상의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던 권영해가 증언했다. 5.18은 북한이 통일전쟁의 마중물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북한군 490명이 광주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황장엽-김덕홍 조가 5.18은 북한 대남사업부가 주도한 사업이고, 사건이 끝나자 대남사업부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5.18을 김일성의 지휘 아래 전개했다는 증언이었다. 황장엽은 북한의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책임 비서였다. 이 모두의 증언들은 앞의 활자화된 남북한 문서들과 100% 일치한다. 남북한 문서들에는 다 같이 북한 병력 숫자가 600명인 것으로 활자화돼있고, CIA 보고서에는 북 병력이 550여 명인 것으로 기재돼 있고, 권영해는 그 중 광주에서 사망한 숫자가 490명이라고 했다. 미국, 남한, 북한 정보기관 수장들의 증언 모두가 다 550-600이라는 숫자에 지향돼 있다. 4. 북한개입이 전혀 없었다는 광주 주장의 유일한 근거 1) ”1997년, 대법원이 5.18을 전두환을 내란행위로 규정하여 처벌했기 때문에 북한군이 올 수 없었다.“ 2) ”북한군 개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인식과 다르기 때문에 허위다.“ 5. 다급해진 광주법원의 사기 행위 1) 박남선-지용의 사기 해남사람 김인태를 도청으로 끌고 가는 34명 프락치 색출조(반탐조)에는 71광수와 73광수가 있다. 노담(노숙자담요)은 71광수를 황장엽으로, 73광수를 인민군 대장 오극렬로 감정했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은 71광수가 황장엽이 아니라 박남선이라 주장케 했고, 73광수가 오극렬이 아니라 지용이라고 주장케 해서 광주법관들로부터 인용판결을 받았다. 이에 나는 이 두 광주사람에게 수천만 원의 배상금을 물었고, 감옥에 갔다. 그런데 이제부터 광주판사들에는 문제가 생겼다. 법왜곡죄을 저지른 것이다, 사진을 보면 71광수는 34명 반탐조를 이끄는 캡틴이고, 73광수는 김인태를 끌고 가 살해케한 살인자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박남선과 지용은 살인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도 영웅행세를 한다. 광주판사들이 법왜곡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광주판사들이 사기를 친 것이다. 2) 심복례 사기 심복례는 80대 후반의 해남 농민으로 김인태의 처다. 노담은 1980.5.23.에 도청 안에 진열돼 있던 관 앞에서 우는 여인을 139광수, 김정일의 첫 부인인 홍일천으로 감정했다. 그런데 5월 재단은 심복례를 내세워 그녀가 139광수라고 주장케 했고, 광주판사는 이를 인용판결했다. 그런데 모든 기록에는 심복례가 남편 김인태의 관을 처음 대한 날이 1980.5.30.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5월 재단에 수천만 원을 물어주고 감옥에 갔다. 광주판사들이 사기-협잡질을 한 것이다. 3) 김진순 사기 김진순은 목포에 사는 90대 노파다. 노담은 5.23. 관 앞에서 눈물짓는 여장한 남성을 3성장군 리을설이라고 감정했다. 그런데 5월 재단은 그 62광수가 김진순이라 주장케 해서 인용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자료에 의하면 김진순이 아들 이용충이 죽은 사실을 처음 확인인 날짜가 1980.6.30.이었다. 6.30에 아들이 죽은 사실을 처음 안 여인이 어떻게 5.23.에 아들 관 앞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광주판사들이 황당한 사기를 친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수천만 원을 5.18기념 재단에 뜯기고, 감옥에 갔다. 5.18기념재단이 광수라고 내세웠던 16명 모두가 다 이런 식의 사기-협잡이었다. 결 론 1. 이상은 5.18을 북이 주도했다는 사실 증거들이다. 위 사실 증거들을 실감나게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들은 수백 가지다. 그 중 일부가 스카이데일리 기사이고, 2009년에 탈북군인연합이 발행한 탈북자 수기이고, 내가 발행한 5.18역사서들이다. 반면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데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 광주는 전두환에 대한 대법 판결을 내세우지만, 전두환 내란사건 판결과 북한개입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 2. 2025.10.31. 광주고법은 ”5.18에 10명 규모의 북 공작원은 개입했다고 본다“는 판결을 내렸다. 북한인 10명이 개입했다 해도 북이 개입한 것이 된다. 그런데 위 34명만 해도 10명이 넘는다. 3. 광주 단체, 광주시, 광주법원은 이제라도 솔직히 고백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2026.4.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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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2일 전

전라도 판사들, 천하의 잡놈들, 참으로 질린다.

5.18이 희대의 사기극인 이유 1980.5.21. 전남지역 4개 무기고 4시간 만에 다 털렸다 5월21일 하루에 광주로 이동하는 20사단 차량부대를 기습하고, 600명이 아시아자동차 군납업체를 점령하여 군용트럭과 장갑차 400여대를 탈취한 후, 전남 17개 군에 위장돼 있는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308정의 총기를 탈취하고, 도청에 2,100발의 TNT 폭탄을 조립하고, 교도소를 5회 공격한 행위가 있었다. 누가 했는가? 광주판사들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 정도는 광주인들도 능히 할 수 있는 행위다” 이렇게 판결서를 썼다. 이런 판사들의 근거 없는 주장은 곧바로 5.18 최상의 유공자들에 의해 정면 부정됐다. 5.18 최상의 유공자들 증언: 광주인은 무기고 털지 않았다 최고반열의 5.18유공자들은 2002년의 [5.18항쟁 증언자료집]에서 자기들은 5월 18~23일까지 숨어 다녔다고 증언했다. 5.23.에 뿔뿔이 도청에 들어가려다 카리스마 넘치는 고위간부로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었고, 5.24에 비로소 비어진 도청에 들어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얼굴로 만나 주로 교수들로 이루어졌던 [수습위원회]를 장악하여 5월 26일에 [항쟁본부]로 개명한 후, 강경노선을 발표했다가 5.27에 점령되었다고 증언했다. 위 5.21의 군사행동은 광주사람이 한 것이 아니었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증언자료집은 2002년 12월, 정권이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동되는 시점에서 발행됐다. 5.18을 광주사람들이 주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아닌 바로 항쟁본부 수뇌부 인물들이 2002년에 밝힌 것이다. 우리를 고발한 5.18기념재단도 그들의 편을 무조건 들었던 광주판사들도 이 사실을 얼마 전까지도 부인했다. 그래서 나는 5월단체 변호인집단과 광주법관들에 증언자료집을 다시 제출했다. 광주인 [34+알파] 명이 광주인 4명 도청으로 끌어가 총살시켰다 미CIA 보고서에는 광주시위를 주동한 자들은 북의 영향을 받는 550여 명의 극렬주의자들이며, 이들은 광주시민을 체포해 인민재판을 열고 벌써 여러 명을 즉결처형시켰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증명하는 5매의 사진이 있다. 매우 다행하게도 보도 매체 [뉴스와논단]이 2024년에 나서서 끌려가는 4명의 광주인이 모두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노숙자담요가 2016년에 확인한 사실을 [뉴스와논단]이 객관적 위치에서 재확인해준 것이다. 외통수에 꽉 걸린 광주 사기꾼 법관들 이들 4명을 연행해가는 괴한들의 숫자가 34명이다. 이들이 착용한 어깨띠에는 [수습학생위원회]라는 글씨가 있지만, 이런 위원회는 광주의 공식기록에 없는 유령단체다. 결국 이 연행의 주체들은 71광수가 지휘하는 [반탐조: 북한민간집단에 침투한 프락치 색출조]이며 광주인 4명을 끌고가는 괴한의 숫자는 34명이다. 끌려가는 사람 4명은 모두 다 광주사람이었고, 모두 다 처형되었다는 것이 객관적 위치에 있는 [뉴스와논단]의 추적결과다. 그렇다면 광주사람 4명을 끌고 간 사람 34명과 인민재판을 주도한 [알파]명과 사형을 즉결처형을 집행한 또 다른 [알파]명은 광주인 4명을 살해한 일당이 된다. 그런데 이 34명 중 2명이 광주사람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자신이 71광수라고 주장한 ‘박남선’과 자신을 73광수라고 주장한 ‘지용’이다. 그렇다면 박남선과 지용은 광주인을 살해한 살인자로 5.20. 함평경찰관 4명을 차로 깔아죽인 배용주처럼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마땅했다. 광주는 숨지 말고 답해야 한다. ⓵ 박남선과 지용이 광주법원에 의해 살인자로 판단이 됐는데 어째서 배용주처럼 처벌하지 않는 것인가? ⓶ 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살인자 32명은 광주사람인가 북한 사람인가? 광주고법의 2025.10.30.판결: “북한공작조 10명정도는 광주에서 활동했을 것” 광주고법 제1민사부(이의영, 조수민, 정재우)는 판결서에서 “북한공작조 10명 정도는 5.18에 개입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500-600명 정도는 아니다”는 요지의 판결을 했다. 파리똥도 똥이듯이 10명이 개입했든 600명이 개입했든 개입은 개입이 아니겠는가? 광주판사들의 시건방진 코미디 판결 광주법관들이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1999년 말, 김경재가 북한 인민군 열사묘지에 가서 얼른 본 광주 관련 묘비 수가 10개 정도였다는 말 한마디에 언더라인을 쳐서 10명 정도를 인정한 것이다. 정보기관과는 거리가 멀고, 가장 엉성한 증언을 한 김경재의 지껄이는 말을 구체성 있는 증언이라며 인용한 반면 권영해 미CIA, 대남비서 황장엽 등 남한, 미국, 북한의 정보기관 수장들의 구체적 증언은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시건방진 말로 무시했다. 미CIA, 권영해, 남북한 문서, 황장엽, 북한노래 [무등산의 진달래]가 밝힌 북한군 숫자 미 CIA 보고서에는 광주시위의 주도권을 잡은 극렬분자들은 550여명이고, 이들은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밝혔다. 권영해는 안기부 차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이렇게 밝혔다. “5.18은 북한이 통일의 마중물 차원에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고, 490명이 광주에서 전사했다. 그들의 명단이 탈북자 이름으로 발행돼 시중에 유통됐다” 북한군 몇 명이 왔기에 그중 490명이 죽었겠는가? 황장엽과 김덕홍은 이렇게 증언했다. “5.18은 북한이 배후조종해놓고 그 책임을 남한에 뒤집어씌웠고, 사태가 종료된 다음 대남공작부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 북한에서 널리 불리는 구슬픈 노래 [무등산의 진달래]에는 북한의 아들들이 조국을 통일시키려고 광주에 와서 억세게 싸우다 무리죽음(떼죽음)을 당해 그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났다는 가사가 있다. 남한 문서 2개, 북한 문서 2개, 군상황일지에는 600명이라는 숫자가 명시돼 있다. 이상의 증거들이 다 같이 600명이라는 숫자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반해 중뿔난 광주판사들이 아무런 논리 없이 위 ‘모든 증언자들은 다 거짓말을 했고, 오로지 순천애서 태어나 김대중을 추종했던 전라인의 말만 신뢰성이 있다’는 판결서를 썼다. 남들이 비웃는 줄도 모르고 꿩머리 갑질하는 인간들이 광주판사들이 아니던가? 광주판사들의 사기협잡질을 만천하에 밝힌다 1) 박남선 게이트 해남의 48세 농민 김인태를 도청안으로 끌고가는 71광수는 누가 봐도 북한의 반탐조 캡틴이다. 박남선은 자기가 600명을 총 지휘한 사실상의 사령관이었다며 자기가 71광수라 주장해서 우리법 판사들과 광주판사들로부터 인용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박남선은 판결에 의해 ⓵ 해남농민 김인태를 체포 연행해 총살시키고, ⓶ 나머지 33명의 괴한들을 지휘해 또 다른 3명의 광주인을 총살시키게 한 살인범이 된다. 광주판사들, 왜 살인범 박남선을 살인죄로 심판하지 못하고, 그로 하여금 5.18영웅 행세를 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인가? 2) 심복례 게이트 김인태의 처 심복례는 남편이 죽은 사실을 5.29.에 알았고, 5.30에 애기를 업고 망월동 야산에 늘어놓은 관들에서 남편의 관을 처음 대했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은 심복례를 139광수로 내세워 광주법관들로부터 인용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139광수가 들어 있는 사진이 촬영된 날은 5월 23일, 139광수에는 아이가 업혀 있지도 않았다. 139광주는 덩치가 우람한 반면 심복례는 키가 140cm 정도는 될 듯하고, 80대 중반에 언어소통이 전혀 안 되는 여인이었다. 광주 변호사집단, 5.18기념재단, 광주판사 집단 모두가 시궁창에서 벼락 맞을 잡질을 한 것이다. 3) 김진순 게이트 김진순은 목포에 사는 90대 중반의 노파다. 5.18에 환장한 5.18기념재단이 언어소통 자체가 안 되는 노파를 제62광수 배역으로 내세웠다. 제62광수가 들어 있는 사진 역시 5.23.에 촬영됐다. 광주판사들은 김진순이 제62광수라고 인용판결을 했다. 과연 이 판결이 옳은 판결인가? 김진순의 아들은 이용충, 5.21. 교도소를 향해 트럭을 몰고가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이용충이 죽은 사실을 6.30에 처음 경찰 전화를 받고 알았다. 6.30에 아들이 죽은 사실을 경찰서에 가서 유품을 보고 확인한 사실이 기록되고 보도되었는데도, 광주판사들은 5.23. 도청에 진열된 관 앞에서 수건으로 이미를 닦고 있는 62광수(리을설)가 바로 김진순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판사가 아니라 천하의 사기 협잡꾼 더하기 잡배가 아니던가! 광주판사들, 천하의 잡놈 소리를 하루에 수만 번씩 들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해도 부족할 천하의 잡놈들이다. 전라도 잡놈들, 천하의 잡놈들, 참으로 질린다. 2026.3.22. 지만원 추천 19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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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6일 전

전라도 양심-광주법원 양심.

전라도 양심-광주법원 양심 1. 5.18기념재단-광주시-광주법원이 불법-야비한 방법으로 야합하여 북한이 주도한 게릴라 남침행위를 광주 구두닦이들이 주도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사기를 쳤다! 5.18은 북한이 통일의 마중물 작전으로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 누구도 팩트와 논리만을 가지고는 이 결론을 뒤집을 수 없다. 결론이 사실처럼 100% 드러나 있는데도, 광주-전라도는 북한의 남침 행위를 광주의 양아치 계급이 주도한 제2의 마그나카르타라고 선전해왔다. 20세 전후의 구두닦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주도한 거룩한 민주화운동이라며, 성골 행세를 해오고 국민 주머니를 털어왔다. 그런데 연구결과 5.18을 주도한 주역은 김일성이었다. 그동안 5.18 주역 행세, 민주화의 영웅 행세를 해온 [5.18항쟁본부 지휘자]들은 2002년 발간된 [5.18항쟁 증언자료집]에서 5.18의 주역은 광주인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미국 최상의 정보기관인 CIA, 미 국무장관, 남한 정보기관의 수장, 북한 정보기관의 수장 모두가 5.18은 북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5.18항쟁 사령부 지휘부 인물들이 5.18은 광주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실직고 했고, 미국-한국-북조선 당국의 최고 수장들이 5.18은 분명한 북한 소행이라고 밝혔는데 오로지 광주-전라도 판사들만 아니라 우긴다. 사실도 논리도 없고, 오로지 자의적 억지만 있다. 광주-전라도의 양심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것이다. 2. 광주-전라도는 광주 현장사진 속에 있는 북한 얼굴을 광주-전라도 사람 얼굴이라고 사기를 쳐서 필자를 감옥에 보내고 4억여 원의 금품을 갈취함으로써 5.18의 명예를 유지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1) 박남선-지용 게이트 71광수는 광주인 4명을 도청으로 잡아가 처형케 한 34명 반담조의 캡틴이다. 노담은 71광수가 황장엽이라고 판독했지만, 광주판사는 이런 살인조 캡틴 71광수가 황장엽이 아니라 박남선이라 판결했다. 박남선이 광주시민 4명을 끌어다 처형시킨 우두머리라는 판결이다. 그런데 박남선이 살인혐의로 처벌받았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박남선은 지금 5.18 유공자이며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 5.18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광주판사가 5.18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는 박남선을 광주시민 4명을 살해한 자라고 판결한 것이다. 광주핀사들이 판사라는 직권을 남용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그야말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73광수 역시 해남군민 김인태를 사형장으로 끌고 간 인물이다. 노담은 그를 인민군 대장 오극렬로 판독했지만, 광주판사는 그런 73광수가 오극렬이 아니라 지용이라고 판결했다. 국과수 임재성 감정사는 육안에 의한 안면인식은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는데, 광주판사는 안면인식 전문가가 아니면서 점령군 위치에서 자의적으로 마구 판단했다. 지용이 김인태를 살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용은 살인혐의로 처벌됐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기록은 없다. 광주는 5.18의 명예를 지키는데 눈이 멀었다. 판사라는 직권을 야비하게 남용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것이다. 5.18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로지 광주의 5월단체, 광주시, 광주 변호사 집단, 광주법원이 모두 야합하여 잡범에 해당하는 파렴치하고 야비한 범죄를 카르텔 차원에서 저지르는 그런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2) 심복례-김진순 게이트 노담은 5.23. 도청에 진열된 관 앞에서 눈물짓는 우람한 체격의 여인 139광수를 김정일의 첫 부인 홍일천이라고 판독했다. 이에 5월단체-광주시-광주변호사 단체는 필자에게 벌을 주기 위해 139광수가 북한의 여인이 아니라 해남에 사는 80대 의 왜소한 체격을 가진 노파 심복례라고 내세웠고, 광주판사는 139광수사 심복례라고 판결했다. 심복례는 남편 김인태를 잃었다. 심복례가 남편의 관을 처음 마주한 날은 5.30. 망월동 야산이었다. 5.30.에야 망월동 야산에서 남편 김인태의 관을 처음으로 마주한 심복례가 5.23. 도청에서 남편 김인태의 관 앞에서 눈물 짓고 있었다는 것이 광주판사의 판결이다. 도깨비도 두 손 들 황당한 판결이 광주판사들의 판결이다. 노담은 도청 안에 진열된 관 앞에서 5.23. 눈물 짓는 62광수를 여장한 인민군 3성장군 리을설로 판독했다. 그런데 광주판사는 그 62광수가 90대 노파 김진순이라고 판결했다. 김진순은 아들 이용충을 잃었다. 김진순이 아들 이용충의 사망사실을 경찰로부터 통보받은 날이 6.30.이다. 김진순이 경찰서에 가서 아들의 유품을 확인한 날짜도 6.30이다. 그런데 광주판사는 5.23. 도청 안에서 아들의 관을 잡고 눈물짓는 여인이 김진순이라고 판결했다. 판결인가 점령군의 횡포인가? 3) 차복환 게이트 제1호 광수의 존재감은 문헌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오로지 사진에서만 나타나 있다. 영화 [김군]의 주인공이 1호 광수다. 그만 큼 1호광주의 존재감은 5.18을 상징하는 로고인물로 부각될 만큼 압도적이다. 1호 광수가 담긴 사진은 10매다. 광주현장을 장식한 한 사람의 인물이 10차례나 사진에 포착돼 있다는 것은 그가 5.18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는 뜻이다. 그 10개 장면에 나타난 1호 광수의 역할은 광주의 스타이고, 5.18의 영웅으로 인식된다. 이러하기에 영화 [김군]의 주인공이 1호 광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22년 5월, 5.18조사위원회가 언론을 총동원하여 당시 20세의 촌뜨기 차복한을 1호광수라며 여론전을 폈고, 이후 차복환은 1호 광수로 등극했다. 차복환은 5.18당시 20세였고, 1980년 2월 경 전남 장흥에서 광주로 올라와 상패 만드는 작업장에 종업원으로 일했고, 당시 군 미필자 신분이었다 한다. 10매의 사진에 나타난 1호광수는 페퍼포그 차 위에서 무장 시위대를 맨 앞장에서 지휘했고, 타이어로 군용트럭의 보닛을 요새화하고 캐리버 50이라는 중기관총 사수역할도 했고, 도청 안과 도청 밖에서 부대원을 지휘하는 등 한눈에도 무장 시위대의 스타로 보였다. 그런데 차복환은 자신의 진술을 보더라도 10개 장면 중에서 오로지 1개 장면만 자기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광주판사는 얼굴에서부터 스타의 째비가 아닌 20세의 촌뜨기 군 미필자를 5.18의 영웅이고 시위를 현장에서 지휘한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라고 판결했다. 장흥에서 20세가 되어 광주지역 군부대에서 하사관으로 복무하는 큰형 집에 왔다가 상패 제작소에 취직한지 겨우 3개월 된 어리바리 군 미필자가 광주 판사들의 눈에는 광주현장을 총지휘하던 대 스타요 영웅으로 비친 것이다. 1호 광수는 10개 장면을 연출했는데 차복환은 그 중 1개 장면만 자기라고 주장했다. 1호 광수에서는 카리스마라는 훈련된 에너지가 풍긴다. 그런데 차복환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페퍼포그 차에 올라타 보라 해서 잠시 앉았다가 자기를 촬영하는 사진기자를 향해 째리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훈련된 몸매, 직위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촌뜨기가 째리는 것 사이에는 격이 다르고 결이 다르다. 이런 유치한 설명을 앞에 놓고, 광주판사는 20세의 장흥 촌뜨기 아이가 일약 광주현장의 대스타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치광이 네로 황제라 해도, 치매 걸린 중증 환자라 해도 이 정도의 판결은 하지 않을 것 같다. 2026.4.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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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일 전

악이 절정에 이르렀다.

악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재명의 똥볼 사태 이재명이 이스라엘을 언어로 공격하고, 이란에 달러를 준 행위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예민한 두 나라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스라엘을 ‘홀로코스트’라는 매우 예민한 단어로 반인륜 국가로 매도한 언어는 지각 있는 지구인이라면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될 금기어였고, 일국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원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스라엘-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였다고 생각한다. 이 순간 빨갱이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해 엄청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이스라엘의 존재감을 희석시키려는 가짜 이야기들을 지어내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서 10년 동안 학생 신분과 교수 신분으로 생활하면서 터득한 미국의 상식으로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나다. 종교의 뿌리가 하나이고, 미국의 정치와 경제와 금융의 주도권을 휘어잡고 있는 실력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국익에 관련된 미국의 국제정치를 사실상 운전하고 있는 실력자들이 곧 이스라엘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서영교의 똥볼 사태 4월 15일의 국정조사 과정에서 돌출된 서영교의 똥볼 효과는 가히 치명적이다. 서영교는 우익진영으로부터는 물론 빨갱이 진영으로부터도 공격받고 조롱을 당할 것이다. 이에 서영교는 이를 만회하려고 여러 가지 무리수를 쓸 것으로 예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무리수가 총동원될 수 있다. 서영교가 무리수를 두면 둘수록 정권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광주의 똥볼 사태 5.18은 북한이 주도한 것으로 확실하게 드러낸 존재들은 두 부류의 광주인들이다. 하나는 5.18 최상의 유공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광주판사들이다. 광주 똥볼 키커 1호, 5.18항쟁사령부 지휘부 요원들 5.18 최상의 유공자 반열에 올라있는 5.18항쟁사령부 사령관 김종배를 위시한 지도부 인물들은 2002년 12월, 김대중 말기에 인쇄된 [5.18 항쟁 증언자료집]에서 5.18의 주역인 그들이 5월 18일부터 5월 23일까지 각자 도망다니다가 5월 24일에야 비워진 도청에 서로 남남으로 들어갔다가 5월 26일 새벽에야 함께 항쟁사령부를 구성했다고 일제히 증언했다. 5월 23일에 도청에 몇 사람이 들어가려 했지만 당시 도청은 고위간부로 보이는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들로부터 제지당해 발길을 돌렸다고 일치된 증언을 했다. 5월 21일, 행군하는 20사단을 습격한 행위, 군납업체를 습격하여 400대의 차량을 탈취한 행위, 불과 4시간 만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있는 44개 무기고를 턴 행위, 교도소를 공격한 행위 등은 광주사람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광주인은 5.18의 주역이 아니였다고 이실직고한 존재가 바로 5.18 최상의 유공자들인 것이다. 그러면 이런 행위는 누가 했다는 말인가? 북한 말고는 달리 지목할 대상이 없다. [북한군 개입]이라는 표현이 법에 저촉된다면 법은 가장 먼저 [5.18 항쟁 증언자료집]에서 [북한군 개입]을 암시한 5.18항쟁사령부 지휘부 인물들부터 처벌해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 개입]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고발된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5.18항쟁 증언자료집]을 복사하여 제시하면 방어가 될 것이다. 놀랍게도 진리는 가장 간단한 것에 숨어 있었다. 광주 똥불 키커 2호: 광주법관들 광주 현장 사진들 중에는 광주인 4명을 도청으로 체포 연행해가는 사진이 있다. 이 4명은 미CIA 보고서 내용 그대로 도청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현장에서 즉결처분되었다는 사실도 객관적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이들 4명을 연행해가는 무장 괴한의 숫자를 세어보니 34명이었다. 사진을 보면 이 34명 무장 괴한의 우두머리(캡틴)는 제71광수다. 그런데 광주법관들은 오로지 필자인 지만원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71광주를 박남선이라고 점령군식으로 판결했다. 이것이 광주의 외통수가 됐다. 위 34명은 광주인 4명을 도청 내부로 끌어다 처형시킨 살인자들인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 34명을 총지휘한 살인자가 바로 광주의 5.18유공자 박남선이라고 판결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남선도 5.20. 함평경찰관 4명을 대형차로 깔아죽인 배용주처럼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박남선이 살인죄로 기소된 적은 없다. 아울러 34명의 살인자들이 살인혐의로 기소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이 34명과 이들의 우두머리인 71광수는 광주인인가 아니면 북한인인가? 광주법관들은 이에 대해 꼼짝없이 답해야 한다. 광주인이라면 5.18은 북이 저지른 것이어야 하고 동시에 34명을 사형혐의로 재판하지 않은 이유를 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5.18은 북한의 소행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똥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에 더해 광주법관들은 심복례, 김진순의 경우에서처럼 파렴치한 사기-협잡질까지 자행하였다. 이 협잡질 역시 광주판사들의 똥볼이 아닐 수 없다. 광주판사들은 두고두고 놀림감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광주! 북한이 주도한 국가전복 작전을 광주의 구두닦이들의 영웅적인 업적이라며 전 세계를 상대로 기만하고, 1980.6.30.에야 아들의 죽음을 경찰로부터 통보받은 90대 노파가 5.23.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라고 사기 판결을 한 사실, 1980.5.30.에야 망월동에 애기 업고 가서 남편의 시신을 처음 확인한 심복례가 5.23. 도청에서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라고 판결하는 광주판사들, 이런 잡놈들에게는 욕과 돌멩이가 일생내내 날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2026.4.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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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칼럼 상위 2위

5.18 진실 알리기 전도사 지만원 박사의 글들을 공유합니다.www.systemclub.co.kr

생성일: 2026년 3월 31일

카테고리: 토론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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