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양념치킨에서 구미 간장치킨까지…대한민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성장사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많은 외국인은 주저 없이 한국식 치킨, 이른바 K-치킨을 이야기한다.
얇고 바삭한 튀김옷, 촉촉한 속살,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양념, 간장과 마늘을 활용한 깊은 풍미는 기존 서양식 프라이드치킨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한국식 치킨만의 특징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중동 등 세계 각지에 한국 치킨 전문점이 들어섰고,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이른바 ‘치맥’ 문화도 한국을 상징하는 외식문화로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K-치킨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대구에서 시작된 양념치킨과 경북 구미에서 성장한 간장치킨의 역사가 있다.
전기구이 통닭에서 프라이드치킨으로
한국의 치킨 문화는 1960~1970년대 전기구이 통닭과 시장 통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당시 통닭은 생일이나 졸업식, 가족 행사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이후 식용유의 보급이 늘고 외식문화가 발전하면서 닭을 통째로 굽는 방식에서 조각낸 닭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프라이드치킨 방식이 점차 대중화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치킨 전문점과 프랜차이즈 형태의 사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치킨은 기본적으로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한국 시장에 맞게 받아들인 형태에 가까웠다.
한국 치킨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꾼 것은 이후 등장한 양념치킨이었다.
대한민국이 만든 새로운 음식, 양념치킨
대한민국 치킨산업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1980년대 초 대구에서 만들어진 양념치킨이었다.
대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윤종계 회장은 프라이드치킨의 바삭한 튀김옷 때문에 손님들의 입천장이 까지거나, 치킨이 식으면 식감이 지나치게 딱딱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소스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추장과 마늘, 간장, 물엿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재료를 조합해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를 만들고, 이를 갓 튀긴 치킨에 입히면서 새로운 형태의 음식이 탄생했다.
이는 단순히 프라이드치킨에 소스를 더한 메뉴가 아니었다. 서양에서 들어온 조리법에 한국의 장류와 양념 문화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음식으로 재창조한 것이었다.
양념치킨은 대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하며 한국 치킨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맥시칸치킨과 대구 1세대 프랜차이즈의 성장
양념치킨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윤종계 회장은 이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브랜드가 맥시칸치킨이다. 맥시칸치킨은 양념치킨을 전국에 알린 초기 프랜차이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으며, 대한민국 치킨 전문점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맥시칸치킨의 성공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멕시카나, 스모프, 맥코리아 등 1세대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이들 업체는 비슷한 메뉴만 판매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양념 배합과 튀김 방식, 가맹점 운영 체계를 발전시키며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의 기반을 넓혔다.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는 영업 방식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전화 한 통이면 따뜻한 치킨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배달문화는 한국 치킨산업의 강력한 경쟁력이 됐다.
대구에서 시작된 브랜드들이 전국으로 뻗어 나가면서 대구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메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치킨 전문점의 성장이 육계산업을 키워 오늘날 하림을 만들다.
양념치킨 전문점과 프랜차이즈가 전국적으로 늘어나면서 닭고기 수요도 급격히 증가했다.
치킨점마다 일정한 크기와 품질의 닭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했고, 냉장·냉동 유통과 도계, 가공, 포장 체계도 함께 발전해야 했다. 치킨산업의 성장이 외식업에만 머물지 않고 국내 육계산업과 식품가공업, 물류산업 전반의 확대를 이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북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육계 가공기업 하림도 대규모 닭고기 수요 확대의 수혜를 입으며 생산시설과 유통망을 확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 하림은 사육과 사료, 도계, 가공, 유통을 아우르는 대형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폭발적인 확산이 국내 육계산업의 산업화와 대형화에 중요한 시장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치킨업계에서는 하림 김홍국 회장이 양념치킨 산업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종계 회장을 각별히 예우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는 한 메뉴의 탄생이 프랜차이즈와 육계산업을 함께 키운 상징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구미에서 시작된 2세대 혁명, 간장치킨
대구의 양념치킨 프랜차이즈가 대한민국 치킨산업의 1세대를 열었다면, 그 뒤를 이어 경북 구미에서는 2세대 치킨의 역사가 시작됐다.
1991년 경북 구미의 작은 매장에서 출발한 교촌치킨은 기존 양념치킨과 다른 간장과 마늘 중심의 소스를 내세웠다.
당시 치킨 시장은 프라이드치킨과 붉은 양념치킨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교촌치킨은 한국 전통 식문화에 익숙한 간장의 짭조름함과 마늘의 풍미를 치킨에 접목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특히 소스를 치킨 표면에 여러 차례 얇게 발라 맛을 입히는 방식은 기존의 양념치킨과 차별화됐다. 치킨 전체를 진한 양념에 버무리는 대신 튀김의 바삭함을 살리면서 짭조름한 맛을 더한 것이 특징이었다.
간장치킨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 받아들여졌고, 교촌치킨은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이후 간장치킨은 거의 모든 치킨 브랜드가 판매하는 대표 메뉴군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치킨산업은 이로써 대구의 양념치킨 혁명에 이어 구미의 간장치킨 혁명이라는 두 번째 전환점을 맞게 됐다.
IMF 외환위기와 치킨 창업의 확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치킨 전문점도 빠르게 증가했다.
비교적 단순한 조리과정과 배달 중심의 영업 구조, 대중적인 메뉴라는 장점 때문에 치킨집은 대표적인 생계형 창업 업종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수많은 브랜드가 등장했고, 프라이드와 양념, 간장치킨뿐 아니라 파닭, 마늘치킨, 숯불치킨, 오븐치킨 등 다양한 형태의 메뉴가 개발됐다.
다만 치킨 프랜차이즈의 급증은 경쟁 심화와 가맹점 수익성 문제라는 과제도 낳았다. 본사와 가맹점 간 원재료 공급가격, 광고비, 배달 플랫폼 수수료, 상권 중복 문제 등은 현재까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02년 월드컵이 만든 치맥 문화
한국 치킨산업이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역으로 확장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국민들이 거리와 광장, 음식점에 모여 축구를 응원하면서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문화가 크게 확산했다. 이후 치맥은 야구와 축구 같은 스포츠 관람뿐 아니라 야식, 모임, 회식, 가족 외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치맥이라는 표현 자체도 한국 치킨의 독특한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단어가 됐다.
2010년대에는 한국 드라마와 예능, 영화에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서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치맥 문화가 알려졌다. 특히 한류 드라마의 인기가 높았던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국식 치킨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졌다.
세계로 뻗어 나간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
현재 한국 치킨 브랜드들은 북미와 유럽,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중동 등 다양한 국가에 진출하고 있다.
BBQ, 교촌치킨, BHC, 네네치킨, 굽네치킨, 처갓집양념치킨, 멕시카나 등 여러 브랜드가 현지 법인이나 가맹사업을 통해 해외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식 치킨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얻은 배경에는 바삭한 식감과 다양한 소스가 있다.
간장과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꿀, 치즈 등 여러 재료를 활용해 메뉴를 계속 개발할 수 있고,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매운맛이나 단맛을 조절하기도 쉽다.
닭고기가 종교적·문화적 제약이 비교적 적은 식재료라는 점도 세계시장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최근에는 단순히 치킨을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한국식 떡볶이와 김밥, 라면, 맥주 등을 함께 제공하며 K-푸드 문화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매장도 늘고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K-치킨
오늘날 한국 치킨은 프라이드와 양념, 간장이라는 기본 메뉴를 넘어 계속 진화하고 있다.
마늘치킨, 허니치킨, 치즈치킨, 파닭, 숯불치킨, 오븐치킨, 매운 치킨, 순살치킨 등 소비자의 취향을 겨냥한 메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건강과 식단 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름에 튀기지 않은 오븐구이 방식과 닭가슴살 메뉴도 확대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에 맞춰 소용량 제품과 반 마리 메뉴를 판매하거나, 포장과 배달에 특화한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다.
K-치킨은 단순히 한 가지 조리법이 아니라 한국 외식업의 빠른 변화와 상품개발 능력, 배달 시스템, 프랜차이즈 운영 경험이 결합된 산업으로 발전했다.
K-치킨의 시작과 명맥을 잇는 대구치맥페스티벌
한국식 치킨은 하나의 인기 메뉴를 넘어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다.
양념치킨의 탄생은 치킨 프랜차이즈를 키웠고, 닭고기 생산과 가공, 냉장유통, 배달산업의 성장을 촉진했다. 구미에서 시작된 간장치킨은 기존 시장에 새로운 맛과 조리방식을 제시하며 K-치킨의 다양성을 넓혔다.
그 중심에는 양념치킨과 1세대 프랜차이즈를 성장시킨 대구, 그리고 간장치킨의 대중화를 이끈 경북 구미가 있었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 치킨산업의 선구자 도시이자 K-치킨의 역사를 만든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사와 명맥은 오늘날 대구치맥페스티벌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치맥페스티벌은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단순한 먹거리 행사를 넘어, 대구·경북에서 출발한 한국 치킨산업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대구를 찾아 다양한 치킨과 공연, 체험 행사를 즐기고 있으며, 축제는 K-치킨의 세계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무대로도 성장하고 있다.
K-팝이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고 K-드라마가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면, K-치킨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음식으로 성장한 K-치킨의 시작에는 대구의 양념치킨과 구미의 간장치킨이 있었다.
대구·경북이 개척한 대한민국 치킨의 역사와 명맥은 오늘도 대구치맥페스티벌을 통해 새로운 세대와 세계인에게 이어지고 있다.